도저히 침몰할 것 같지 않았던 대형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 호가 첫 향해 몇 시간 만에 침몰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이 사건의 아이러니컬한 측면은 종종 강조되어 왔지만, 이 불운한 배에 탔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승객들이나 승무원들의 목격담을 직접 들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목격담은 이 비극적 사건의 진상과, 현장에 직접 있었던 사람들의 공포감을 실감나게 전해 준다.
칠흑 같은 밤 대양 한가운데를 서서히 운항해 가던 배가 갑자기, 마치 묘지 속으로 사라지듯 심해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승객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세한 목격담에 앞서 우선 이 비극적 사건의 배경을 간략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1912 년 4월 10일,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와 파워를 자랑하는 여객선 타이타닉 호가 시속 22 해리의 속도로 영국 사우샘프턴 항을 떠나 뉴욕으로 출발했다. 배는 높이 11층, 길이 883 피트, 폭 92 피트, 무게 46,000 톤 규모였다. 화이트 스타라인 사에서 제작한 이 '기적의 배'는 침몰 예방용으로 16개의 방수 격실이 만들어져 있었으며, 그중에서 두 개 이상의 방수 격실이 깨지지 않는 한 침몰할 위험이 없었다. 배에 승선한 2,200 명 중에는 현재의 화폐 가치로 55,000 달러 이상의 많은 요금을 내고 일등실에 탄 세계의 거부들도 포함돼 있었다. 최저요금 객실에는 700 명의 이민자들이 타고 있었다.
4월 14일 밤 11시 35분경 갑자기 배 앞쪽 어둠 속에 태산만한 빙산이 나타났다. 배는 엔진을 풀가동하여 전속력으로 후진하기 시작했고 어렵게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빙산과의 정면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거의 20 만 톤에 달하는 빙산이 배의 우현 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빙산의 얼음 조각들이 갑판 위로 쏟아졌고 몇몇 승객들은 이 얼음 조각들을 주워 음료에 넣어 먹기도 했다. 그러나 빙산이 배 옆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배의 수면 아래쪽 측면부에 300 피트에 달하는 긴 틈을 내고 말았으며 이 때문에 여섯 개의 빙수 격실에 바닷물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에는 모두 16척의 구명보트와 4척의 접는 보트가 있을 뿐이었다. 배에 탄 승객의 절반밖에 탈 수 없는, 법에 정해진 최소한의 숫자였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밝혀진 생존자는 전체 승객의 절반도 되지 않는 적은 수였다. 자정을 5분쯤 지나자 선장은 배의 운명이 9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구도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마침 10 마일쯤 떨어진 곳에 캘리포니안 호가 있었지만 이 배는 무선통신을 꺼놓고 있었기 때문에 타이타닉 호에서 보낸 구조 신호를 듣지 못했다. 뉴펀들랜드 남쪽 500 마일 해상에 타이타닉 호만 홀로 남겨진 채 마지막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물 속 온도는 영하 4 도 가량이었지만 바깥 온도는 영상 1 도에 불과했다. 물의 염도 때문에 물이 얼어 있지는 않았다.
해리 시니어는 사고 당시 타이타닉 호의 소방관이었다. 그는 배가 빙산과 충돌할 당시 갑판 밑에 있었다. 그는 이렇게 증언했다.
침상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 쿵 하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아이구, 이거 어디 충돌한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었다. 즉시 갑판으로 뛰어올라가 보니 앞 갑판에 빙산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들이 잔득 쌓여 있었다. 배가 당장 위험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일단 숙소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소방관 한 명이 황급히 뛰어 내려와 "모두 빨리 나와 구명보트를 내리라네"라고 외쳐댔다. 즉시 갑판으로 뛰어올라가 보니 선장이 "모든 소방관들은 빨리 웰 갑판 쪽으로 내려가라, 올라오는 녀석은 총살시켜 버리겠다."며 소리치고 있었다.
곧 첫 구명보트가 내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 열한 명과 여자 두 명, 모두 열세 명이 타고 있었다. 그중 세명은 백만장자 거부들이었고 한명은 화이트 스타 라인 회사의 전무이사인 브루스 이즈메이였다.
나는 최상갑판으로 뛰어올라가 접는 보트를 아래 갑판으로 내리는 일을 도왔다. 순식간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옆에 이탈리아인 여자 승객이 아이 둘을 안고 있는 게 보였다. 그중의 한 아이를 내가 맡은 뒤 여자가 배 밖으로 뛰어내리도록 도와주었다. 나도 아이를 안은 채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 밖으로 다시 나와보니 품안의 아이가 죽어버린 것 같았다. 여자 쪽을 쳐다보니 필사적으로 헤엄쳐 나가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타이타닉 호의 보일러가 폭발하는 바람에 큰 파도가 일기 시작했으며, 여자는 그 파도를 보고 수영을 포기하는 것 같았다. 내 품안에 있던 아이는 죽은 게 분명했으므로 나는 그를 물에 놓아버렸다.
나는 반 시간 가량 주변을 헤엄쳐 다니며 버텼을 것이다. 배영법으로 수영을 하면서 보니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고 있었다. 마침내 보트 한 척을 발견한 나는 그 위에 올라가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그러나 누군가가 노로 내 머리를 때리며 올라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미 보트 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보트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가까스로 보트에 기어 올라갈 수 있었다.
D. H. 비숍 부인도 타이타닉 호의 선미 부분까지 물이 넘치기 시작하기 전에 구명보트를 타고 무사히 배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구명보트에 올라 타이타닉 호에서 1 마일 이상 떨어질 때까지 우리는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1 마일 정도 벗어나서야 우리는 갑판을 비추고 있던 배의 불빛들이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불빛들은 점점 더 큰 각도를 그리면서 천천히 물 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배가 아주 느린 속도로 가라앉았기 때문에 갑판을 비추는 불빛들의 위치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인식되지 않았다. 불빛의 경사 각도가 15분 간격으로 점점 커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변화를 감지하게 해주는 유일한 표시였다.
그러나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배의 침몰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결국 끔찍한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닫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뱃머리 부분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하자 배의 경사 각도가 두드러져 보였다. 승객들이 모두 배의 뒤편으로 몰려가는 게 보였다. 마치 파도가 쓸려가는 모습 같았다. 최저요금 객실에 있던 새카맣게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보트 한 척으로 몰려가는 모습도 보였고, 위 갑판으로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1 마일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 이 모든 광경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 배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이리저리 우왕자왕 몰려다녔고 이 때문에 갑판 위의 불빛들이 보였다 안 보였다 했으며 이에 따라 보트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극심한 공포감이 한 시간정도 계속된 것 같다. 갑자기 배가 물 속으로 곤두박질친 모습이 되더니 수직으로 서 있었다. 한 4분 정도 그런 모습으로 똑바로 서 있었던 것 같다.
마침내 배가 천천히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먼저 뱃머리 부분부터 완전히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점점 속도가 빨라져 선미 쪽까지 침몰하기 시작했다.
배의 불빛은 침몰하는 순간까지도 계속 타올랐다.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배의 선미 쪽에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배가 가라앉는 순간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1 마일 떨어진 우리들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비명 소리는 점점 더 가늘어지더니 나중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공간에 여유가 있던 구명보트들이 이들을 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갈 수도 있었겠지만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그 구명보트들까지 침몰했을 것이다.
세벽 2시 무렵 타이타닉 호의 뱃머리가 물에 잠겼으며, 거대한 프로펠러 세 개가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다 배의 기관 굴뚝 중 하나가 쓰러졌다. 2시 10분경에는 선미 부분이 45 도 각도로 물밖에 나와 있었다. 이후 배는 두 동강이 나기 시작했으며 2시 18분경에는 거의 25층 높이의 선미 부분이 수직으로 선 채 모습을 드러냈다. 뱃머리 부분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선미 부분만 위로 치솟았다. 2시 20분경 드디어 선미 부분까지 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두 동강난 배가 깊은 바닷물 속으로 완전히 침몰해 버린 것이다.
아치볼드 그레이시 대령도 최후의 순간 극적으로 배를 탈출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이 아직은 없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클린치 스미스와 내가 알았을 것이다. 배 앞쪽의 선교에 물이 들이쳤을 때야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선미 쪽으로 몰려들어 난간을 기어올라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후 그들 중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나는 승무원들과 함께 앞쪽 우현에 있던 보트 고정용 철주를 조정하여 선원 사무실 지붕 위에 있던 엥겔하르트 보트를 아래 보트용 갑판까지 내리려고 안감힘을 썼다. 보트가 있는 지붕에 올라간 승무원이 "승객 중에 누구 칼 가진 사람 없습니까?"라고 외쳤다. 나는 주머니에서 내 칼을 꺼내 그에게 던져주며 "여기 조그만 주머니칼이 있는데 도움이 되겠소?"라고 말했다. 천으로 만든 보트 커버를 벗겨내고 보트를 끌어내리는 일은 평소보다 더욱 힘들었다. 이것은 지체없이 좀더 빨리 이 일에 착수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결국 가까스로 보트를 끌어내릴 수 있었다. 보트를 밀어 내려보내기 위해 아래쪽 벽에 너덧 개의 긴 노를 비스듬히 기대어 놓았다. 보트는 노를 타고 구명보트 갑판으로 쿵 하고 미끄러져 내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가 몇 개 부러져버렸다. 클린치 스미스와 나는 황급히 비켜서서 난간에 등을 기댄 채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혹시 보트가 파손돼서 물이 새는 건 아닌지 무척 걱정이 되었다. 보조 무선사 해롤드 브라이드도 그때 자신이 본 상황을 설명했다. "굴뚝 가까이에 보트 한 척이 보여서 그쪽으로 갔습니다. 열두 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 보트를 보트용 갑판(가장 높은 갑판)으로 끌어내리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아주 고생을 했지요. 이 보트가 배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보트 같았습니다. 몇 분 동안 이들의 작업을 애타게 바라보며 도와주다 결국 간신히 보트를 탈 수 있었습니다."
이 무렵 지붕 위에 있던 한 고급 승무원이 우리 쪽 승무원들을 향해 "그쪽에 혹시 승무원 누구 없소?"라고 외쳤다. 몇몇 승무원이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보트용 갑판을 벗어나 또 다른 엥겔하르트 보트를 떼어내는 일을 도우러 지붕으로 올라갔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칼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승무원들과 함께 일하는 이등 항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이 이등항해사는, 우현 쪽 보트는 결국 바다에 띄우지 못했고 다른 한 척만 무사히 보트용 갑판으로 내려서 바다에 띄울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승무원들은 앞서 갑판으로 내렸던 엥겔하르트 보트를 신속하게 물에 띄우지 않고 있었다. 아마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보트를 기다렸다 같이 띄울 생각인 것 같았다. 한 명은 키가 크고 한 명은 키가 작은, 하얀 옷을 입은 잘 생긴 젊은 승무원 두 명이 타이타닉 호가 과연 침몰한 것인지에 대해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난간에 기대에 다른 승무원들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가서 돕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당시 주위에는 다른 승객들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한 사람은 동료 클린치 스미스였다. 마지막 구명보트를 좌현 쪽에 바다에 띄운 지 벌써 15분 정도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일행 모두를 소스라치게 만든 끔찍한 소음을 들었다. 바닷물이 선교에 부딪치며 앞쪽에 있떤 배 승강구로 넘쳐 들어오는 소리였다. 물줄기는 순식간에 보트용 갑판을 뒤덮어버릴 기세였다. 승무원들이 남아 있는 엥겔하르트 보트를 난간 위로 들어올리는 시간이 예상 외로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보트에 올라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바다에 뜬다 해도 곧 전복해 버릴 것 같았다. 이런 모든 점들을 고려해서 클린치 스미스는 나에게 배의 우현 쪽 선미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가 앞장을 서고 나는 바로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정해진 방향으로 몇 걸음을 가기도 전에 아래쪽 갑판으로부터 우리 쪽 보트 갑판 쪽으로 사람들이 새카맣게 몰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이들 때문에 배 선미 부분으로 가는 게 불가능했다.
몰려온 사람들 중엔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있었다. 모두 아래쪽 갑판에서 올라온 2, 3 등실의 승객들 같았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들과, 우리들 뒤로 몰려오고 있는 바닷물을 보자 순식간에 방향을 돌려 다시 선미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1 등실과 2 등실 객실을 나누는 철제 방책과 난간까지 몰려갔다. 아직 이들에게서 히스테리컬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진 않았지만 공포에 질려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클린치 스미스와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곧 개달았다. 뒤에서는 바닷물이 몰려오고 있었으므로 뒤로 갈 수도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당시 우리가 있던 장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타이타닉 호의 '수위표기 점'에서 선미 쪽으로 약간 떨어진, 승무원실 벽 사이의 모퉁이였다. 클린치 스미스는 내 왼편 모퉁이 끝에 꼭 붙어 있었다. 우리는 바다와 난간 쪽을 등지고 있었다. 승무원실 지붕 위를 보니 내 오른쪽 위로 남자 한 명이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배를 깔고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클린치 스미스는 펄쩍 뛰어서 이 지붕 위까지 닿으려 애를 썼다. 나도 그를 따라했지만 둘 다 실패하고 말았다. 자락이 긴 무거운 오버코트와 그 안의 노포크코트, 그리고 엉성하게 걸쳐 입은 구명보호대 때문에 제대로 뛸 수 없었다. 목표물을 잡는 데 실패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을 때는 이미 순식간에 바닷물이 옆구리까지 차 올랐다. 나는 몸을 뒤덮는 바닷물 속에서 다시 뛰어올라 보기 위해 물 속에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는 마치 해변의 파도 위에서 하는 것처럼 다시 한 번 몸을 힘껏 솟구었다. 이번에는 염두에 두었던 목표물을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지붕 가장자리 철제난간을 기어올라 제2 기관 굴뚝 밑의 승무원실 지붕에 엎드릴 수 있었다. 내가 본능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그 묘기는 해변에서 파도를 타는 수영객들에게는 익숙한 방법이었다. 상황이 하도 급박해서 옆의 클린치 스미스에게 이 방법을 써보라고 조언할 틈도 없었다. 그제서야 좌우를 살펴보니 불행하게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파도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를 지붕까지 올라오게 만들었던 그 파도가 스미스와 밑에 있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조금 전에 보았던 지붕에 누워 있던 남자까지 완전히 집어삼킨 뒤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마지막까지 함께 살아남자고 약속했던 내 친구 클린치 스미스와 영원히 이별하고 말았다. 친구와 헤어지게 된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리게 아팠지만,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도와줄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의 마지막 순간도 내가 추측한 것일 뿐이다. 선미를 향해 달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있던 장소에서 꼼짝 못하게 된 상태에서, 배가 기우뚱하며 침몰하기 시작하자 그의 몸이 갑판에 있던 밧줄이나 장비 같은 것이 걸려 밑으로 쓸려 가버린 것 같았다....
타이타닉 호가 마지막으로 침몰하기 전에 이상한 모습으로 잠시 머뭇거리면서 수직으로 서 있었던 이유는, 배의 보일러와 기계장치들이 원래 있었던 자리에서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렸기 때문이라는 가설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2 등실 승객이었던 케임브리지 대학생 로렌스 비슬리는 타이타닉 호 사건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에 특히 주안점을 두며 이에 관한 저서를 집필한 사람이다. 신문에 실리기도 했던 그의 목격담은 구명보트에 있던 사람들이 보았던 배의 마지막 침몰 모습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그 역시 배로부터 "1, 2 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다."
"... 절대적인 침묵에 싸여 배의 최후를 지켜보는 순간, 노를 젓던 사람들은 모두 노를 놓았고 다른 사람들도 꼼짝 않고 이를 지켜보았다. 옆 사람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타이타닉 호의 동체는 서서히 기울어지며 선체 중앙 부분 후미쪽을 중심축으로 선회했다. 그리고는 수직으로 똑바로 곤두선 채 얼마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배가 선회하는 동안 밤새도록 빛을 비추던 배의 등불들이 갑자기 일제히 꺼졌다가 다시 들어오더니 이내 완전히 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배에서 커다란 소음이 들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폭발음 같다고 말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는 배의 엔진과 각종 기계장치들의 베어링이 풀리면서 원래있던 자리에서 아래쪽으로 굴러떨어지며 모든 것들을 부숴버리는 소리 같았다. 아니면 배 자체가 파괴되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울부짖는 소리, 신음 소리, 덜거덕거리는 소리,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결합된 소리였다. 폭발이 일어났을 때 들리는 일회적인 굉음은 아니었다. 육중한 기계장치들이 아래쪽(원래는 뱃머리 부분이었던 곳)으로 굴러떨어지면서 나는 것 같은 이 소음은 몇 초 동안, 아마 15초 내지 20초 동안 계속 이어졌다. 아마도 이 기계장치들은 배의 맨 아래 부분까지 굴러 떨어져서 배에서 가장 먼저 침몰된 부분이었을 것이다. 이 소음은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끔찍한 소리였다. 물을 타고 들려 오던 그 소리는 사람들의 넋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마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무거운 물체들이 집의 지붕에서 아래층으로 굴러떨어져 내리며 계단과 모든 가구들을 다 때려 부수는 소리 같았다...."
이제 내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자. 다시 한 번 파도가 밀려왔을 때 나는 힘과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점점 환해지는 걸로 보아 물 표면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대낮의 밝은 빛은 아니었지만 수면 바로 아래까지 접근하자 별빛 덕분에 빛의 차이가 느껴졌다. 물 위로 나가면서 배의 잔해물들이 옆에 함께 떠오르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잡을 만한 크기의 잔해물은 조그만 나무 널빤지뿐이었다. 나는 오른팔 아래로 널빤지를 밀어넣었다. 널빤지를 잡고 물 밖으로 나가면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물 위에 떠 있게 도움을 주는 물체라면 무엇이든지 붙잡고 있는 게 현명하겠다는 생각이 났다. 마침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 나무상자처럼 보이는 잔해물 조각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이 나무상자를 중심으로 주변에 널려 표류하고 있던 잡동사니들을 모아 임시 뗏목을 만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타이타닉 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고요한 대양 밑으로 완전히 침몰해 버린 뒤였고 파도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배와 배 안에 있던 모든 소중한 소유물들을 바닷가 완전히 집어삼켜 버렸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은, 내 뒤편, 배가 침몰한 지점에서 나는 꾸르륵 거리는 소음뿐이었다. 내가 물 속에서 빠져 있는 동안 배가 가라앉아 버린 것 같았다. 다른 목격자들이 주장한 타이타닉 호의 침몰 시간도 내가 물 속에 가라앉았다 빠져나온 시간과 비슷했다.
당시 내 눈을 사로잡았던 가장 공포스러웠던 장면은 이리저리 어지럽게 배의 잔해물들이 널려있는 고요한 바다 바로 위에 마치 관을 덮는 휘장처럼 엷은 회색의 자욱한 안개가 깔려있던 모습이다. 이 안개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분명히 실제 안개였다고 확신한다. 배가 가라앉은 지점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수증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안개 때문에 현장은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으며 내 머릿속에는 단테나 버질의 문학작품에서 읽었던 지옥과 연옥, 망각의 강 레테 같은 것들이 맴돌았다. 이런 괴기스러운 장면과 함께 이 끔찍한 비극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들었던, 죽어가는 자들의 마지막 절규, 하늘 끝가지 이어질 것 같았던 살려달라는 마지막 외침이 잊혀지지 않았다. 수천 명의 목에서 터져나오던 고통스러운 죽음의 비명 소리, 울부 짖음, 신음 소리, 공포감에 짓눌린 비명 소리, 물에 빠져 죽으면서 내쉬는 끔찍한 마지막 호흡 소리를 우리 생존자들은 죽는 날까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이봐여 거기 그 배! 이봐요! 살려줘요!" "오 하나님! 오 하나님!"이라고 가슴이 찢어져라 비통하게 외쳐대던 비명 소리들, 검은 바다 위를 필사적으로 헤엄치며 우리 쪽으로 오려고 발버둥치며 내지르던 남자들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이 소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약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나무상자를 붙잡고 물 위에 떠 있는 동안 나는 몇 야드 떨어진 곳에 세 구의 시신이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한군데 모여 떠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의 오른편 바로 뒤쪽에서도 한 구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익사한 사람들이 틀림없었다. 아마 이들도 나처럼 물 속 깊이 빠졌던 사람들이었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만큼의 폐활량과 수영 솜씨를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사실 학교 다닐 때부터 잠수를 연습했던 처지였다. 근처에 살려고 발버둥치거나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이 단 한 병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무상자 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친 다음 두 다리로 딛고 서서 몸에 균형을 잡아보려 했으나 뒤집혀 물속에 거꾸로 처박혔다가 다시 나왔다.
한 번 더 시도했다가 다시 실패하여 물 속에서 자맥질을 친다음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멀리 나무상자보다 훨씬 더 좋아 보이는 피난처가 보였다. 마지막 순간, 나도 끌어내리는 데 한몫을 담당했던 바로 그 엥겔하르트 보트였다. 이 보트를 끌어내려 물 위에 띄우려는 순간 바닷물이 보트용 갑판을 덮쳤던 것이다. 반쯤 뒤집한 이 보트 위에는 열두어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복장을 보니 모두 배의 승무원들 같았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는 붙잡고 있던 나무상자를 과감히 버리고 배의 잔해물들을 헤치며 필사적으로 보트를 향해 헤엄쳐 갔다. 상당한 거리를 헤엄쳐 간 끝에 마침내 이 엥겔하르트 보트의 좌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런 보트들 덕택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보트 측면에 도착하자 이미 보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태도가 다소 미심쩍어 보였다.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나는 왼팔을 이용하여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젊은 승무원을 움켜잡았다. 동시에 오른쪽 다리를 보트에 걸쳐놓은 뒤 보트 위로 몸을 올려놓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마침 보트 선미 쪽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내 발을 들어 거들어주었다. 결국 나는 이 뒤집힌 보트의 가장자리에 누운 자세로 간신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올라오고 난 뒤에도 십여 명의 조난자들이 나처럼 헤엄을 쳐서 보트로 다가왔으며 우리는 이들을 모두 보트 위로 올라오게 도와주었다. 완전히 탈진한 사람이 내가 있던 좌현 쪽으로 다가왔다. 보트 위로 그를 끌어올리자 그는 몇 시간 동안 내 앞에 그대로 누워 있기만 했다.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이 뒤집힌 보트 위에라도 올라올 수 있었던 순간은 정말로 최고의 정신적 안정을 얻을 수 있었던 황홀한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이런 기분을 더욱 강렬하게 느꼈다. 이 기분은 다음날 아침 구조선 카르파티아 호의 갑판에 오를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선미 부분이 물 속에 잠긴 지 약 9분 뒤에 먼저 침몰했던 두 동강난 배의 앞머리는 이미 해저 바닥에 닿았을 것이다. 선미부분은 훨씬 더 느리게 가라앉아서 해저 2 마일 밑의 진흙뻘과 충돌할 때까지 36분 정도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배의 기타 잔해물들은 수시간에 걸쳐 바다 밑으로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