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산하
(2008/03/13)

제목


나를 깨운 이은하

80년대 초반과 중반까지의 짤막한 시기에 반짝했던 문화적 코드 가운데 하나가 노가바입니다.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지요.  목놓아 부르고 싶어도 부를 노래의 절대량이 부족했고 어떻게든 씹어 주고 싶은 절대악이 존재했지만 씹을 수단이 없었던 이들에게 노가바는 일종의 비상구였으며 잠깐 동안의 체제 전복이었지요.  귀와 입에 익은 노래들의 가사가 절묘하게 뒤바뀌어 180도 다른 양상으로 수용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무시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지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술잔이 비었음을 모르고  시바스를 혼자 먹다가 총에 맞아 서거하신 이후 널리 불리웠던 노가바 하나 소개할까요. 이 곡의 원주인은 각하 마지막 가셨던 자리의 여흥을 위해 불려갔던 여가수였습니다.   가사는 많이 다르나 원곡과 마찬가지로 콧소리를 넣고 안나오면 안나오는 대로 목젖을 쥐어짜서 바이브레이션을 가미해야 하고 백코러스도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유신하면 생각나는 그 사람 (백코러스:그 사라암~~ )
언제나 긴급조치 좋아했지. (백코러스: 좋아했지~~)  
대망의 80년대 구실 삼아서 민주주의 즈려밟던 그때 그 사람  (중략)
어느날 궁정동에서 총맞았지 (백코러스 : 총맞았지~~)
세상에서 제일 믿던 재규에게 (백코러스 : 재규에게~~)
나는야 괜찮다고 뇌까리면서 고개를 떨구었던 그때 그 사람  
한 번만 한다더니 자꾸 또 하고 평생을 해먹으려 발악하던 사람
지금은 동작동에서 행복할까 쓸쓸한 땅 속에서 행복할까
어쩌다가 한 번쯤은 생각을 해 봐도 그때마다 이갈리는 그때 그 사람

시대가 흘러 전두환이 퇴진했을 때는 5공하면 생각나는 그 사람으로.... 언젠가 연희동에서 쫓겨났지 세상에서 제일 믿던 태우에게...로 둔갑해서 불리우기도 하였으나 역시 오리지널의 포스를 따라잡기는 어려웠습니다.    노가바는 무척이나 탐욕스러웠습니다.  쟝르 불문 곡조 불문 누군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담을 수만 있다면 어떤 노래든 노가바의 제물이 되었지요.   최고의 유행가요부터 아이들 동요까지 말입니다.   조용필의 전설적인 명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가엾게도 군림한 자로의 고독으로 전락했고,

여당으로 왔다가 야당으로 갈 수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총맞아 억울할 때 죽을 때 죽더라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권력욕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지키련다 오늘도 저 높은 곳 군림한 자로....... (이하생략)

이치현이 부른 "집시 집시 집시 집시여인~~"은 89년 최장기 파업의 기록을 세우며 남성 노동자들도 부끄럽게 만들었던 세창물산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의해 "우린 세창 물산 깡순이야~~"로 작업복을 입어야 했으며 크레파스 사온 아버지를 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던 아이는 어이없게도 꿈에도 데모를 하는 투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마스크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오오
싸울 일은 너무 많은데 마스크는 너무 없어서
꽃병 몇 번 던지고 나니 잡혀가고 말았어요 오오
밤새 꿈나라엔 문어 대가리가 춤을 추었고
크레파쇼 전경들은 최루탄을 쏘고 놀았죠 오오

83년 청소년 축구팀이 당당 4강에 들었을 때 방송 전파를 타면서 전국에 알려졌던 "우리들은 대한건아 씩씩하고 용감하다~~~"의 당당함은 "우리들은 좌경학생 좌장면 먹고 좌전거타고....."로 슬프게 무너졌는가 하면 혜은이가 노래한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란나라는 무정하게도 "빨간 나라를 보았니 사적소유가 철폐된 빨간 나라를 보았니 억압착취 없는 나라....."로 국체가 바뀌는 설움을 맛보고 말았습니다.   요즘 자폐아동의 감동적인 아버지로 CF에 등장한 이상우씨의 출세곡이자 히트곡 그녀를 만나기 100미터 전은 다음과 같이 무자비하게 해체되기도 했지요.


저기 보이는 00 파출소 오늘은 파출소 때려부시는 날
마음은 선봉에서 싸우고 싶지만 마음이 떨려오네
옷 속에 화염병이 보일까 자꾸 쇼윈도에 날 비춰 봐도
겁먹은 내 모습이 더 못마땅한 파출소 뽀개는 곳 100 미터 전

(후렴) 화염병 한 상자를 박아 줄까 무슨 구호 크게 외칠까
       깜짝 놀란 경찰관 성난 눈빛이 확실히 나를 찍어버린 것 같아
       옥상에 전경이 총쏘는 건 아닐까 시민들은 뭐라고들 할까
       어차피 해야 할 일 당당히 해야지 용기를 내야지

혹시나 택이 샌 게 아닐까 벌써 1분씩이나 지났는데
골목길에 숨어 있던 동뜨는 사람 잡힌게 아닐까
곱게 넘겨빗은 내 머리 백골단이 낚아채진 않을까
오늘따라 이 길이 더 멀어 보이네 파출소 뽀개는 곳 100미터 전  

그녀를 세 번째 만나는 날의 설렘은 파출소 때려부수기 전의 긴장감에 처참하게 쫓겨나고 수줍은 고백의 용기는 엉뚱한 만용으로 승화되는 이 노가바 앞에서 저는 웃다가 웃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듯 노가바의 묘미는 비틀기에 있습니다.  그 비틀기가 경천동지 상전벽해에 가까와질수록 그 통쾌감은 크고 생명력은 깁니다.  대한민국 정부당국도 그 대열에 동참한 적이 있습니다. 김민기씨가 짓고 양희은씨가 불렀던 "금관의 예수"의 원래 가사는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였지만 유신시대의 공륜 엿장수들은 이곳에 주님이 임하기보다는 휴전선 너머 그곳으로 임하기를 바라며 "오 주여 이제는 그곳에 그곳에 그들과 함께......"로 부르게 했습니다. 그거도 모자랐던지 중간에 나오는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은 알뜰하게 "어디에서 왔나 표정없는 사람들"로 바꾸어 3류 반공 찬송가로 노가바해 버립니다.   얼마 전 양희은 CD를 샀더니 거기에서조차 "오 주여 이제는 그곳에...그들과 함께" 하시라고 절규하고 있더군요.  김민기씨와 양희은씨의 심경..... 가히 위의 이상우씨를 능가하지 않을까 합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처참하게 일그러진 노래 중의 하나는 당연히 "아 대한민국"입니다.  댄스음반이건 롹 음반이건 가릴 것 없이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마친" 음반이라면 건전가요 하나씩은 삽입하게 했던 무지막지의 군부독재가 가장 심히 듣기에 좋았더라를 부르짖은 노래이자 반라의 무희들이 태극기 군무를 펼치는 전무후무한 풍경을 창출했던 이 노래는 가사 하나 하나가 짓밟히고 재창조되었죠

하늘엔 최루탄이 터지고 강물엔 공장폐수 흐르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완전히 차단당한 곳
뚜렷한 군부독재 있기에 갈수록 골병드는 민중들
원하는 것은 돈 있으면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빽 있으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리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리 매일매일 싸움을 하네
아아 너희 두환민국 아아 파쇼조국
아아 영원토록 투쟁하리라......

노가바가 유행했던 시기는 자신의 속내를 자유롭게 풀어내지 못했던 때이고 글자 몇 자 바꾸면 포복절도의 유쾌함이 덮치게끔 도와 주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풍자의 대상이 엄존하던 무렵이며 말도 안되는 노래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쏟아져나와서 그 쓰레기들의 재활용을 고민하던 즈음과 일치합니다.   이미 그 시기가 아득하게 사라졌고 다시 노가바의 충동을 느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은하씨의 노래가 못내 저의 까마득한 장난기를 자극하여 발기시키는군요.   일종의 비아그라인가.   한때 "멀리 기저귀 빠네....."로 노가바하며 웃었던 그녀의 옛 히트곡을 흥얼거리면서 그녀의 신곡을 난도질해 보고픈 충동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렇게 말이죠.



  
YO! 한반도 대운하
한반도- 대운하! 한반도- 대운하!
서울에서 땅끝까지
HYO! 한반도 대운하!

우리나라 아름다운 산천과 물줄기가 있는데
그 경치를 이제부터  조지려고 한다네
모두다 버려진 물줄기 속에(새로운 돈벌이 있어)
너희가 삽질 한다면(우린 긁을 수 있어)

*천만년이 지나가도 되돌릴 수는 없는 한반도대운하(큰 삽질 하나)
다시 살아나는 투기 전처럼 긁을 수 있어 대박 칠  수 있어(칠 수 있어요) *2

산으로 가는 배 보며 기막힌 웃음소리 터지고
물도 맑고 산도 고운 시골은 이제 아예 없어지겠지

버려질 물줄기 속에(새로운 돈벌이 있어)
너희가 삽질 한다면 (우린 긁을 수 있어)

*천만년이 지나가도 되돌릴 수는 없는 한반도대운하(큰 삽질 하나)
다시 살아나는 투기 전처럼 긁을 수 있어 대박 칠 수 있어(칠 수 있어요) *2

(랩) 국민 모두를 조지는 건 금수강산 박살내는 한반도대운하
3박4일 서울길의 코미디 대한민국 모든 강에 기름이 넘쳐 흘러  
나를 조지고 후대 후손을 조지는 한반도대운하

버려진 물줄기 속에(새로운 돈벌이 있어)
   너희가 삽질한다면 (우린 긁을 수 있어)



                    *천만년이 지나가도 되돌릴 수는 없는 한반도대운하(큰 삽질 하나)
               다시 살아나는 투기 전처럼 긁을 수 있어 대박 칠 수 있어(칠 수 있어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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