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스페인의 유명한 철학자 발타자르크시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라.” 그것이 바로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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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NAL 안녕하십니까? 김갑동입니다. 우리 주변의 성공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그 감동과 희망을 함께 나눌 김갑동의 성공시대 오늘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행복한 의사를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경기도의사회 윤창겸 회장인데요. 전하는 말씀 듣고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CM

본부장: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윤창겸:  네, 안녕하십니까?

본부장: 이렇게 인터뷰 응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윤창겸: 감사합니다.  

본부장: 경기도의사회 와가지고 회장님 뵈니까 아주 인상이 너무 좋습니다.

윤창겸: 아, 감사합니다. 너무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부장: 다 아는 것입니다마는 의사라는 직업이 참 어렵고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전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요. 혹시 회장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장래희망이 의사셨습니까?

윤창겸: 아, 그렇지는 않았고요. 원래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역사책을 공부하다 보면은요. 독일의 닥터 슐레이만 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슐레이만은 그리스에 가면 박물관에 흉상이 남아있거든요. 그분이 독일인인데. 그 사람 꿈은 어렸을 때 동화책에 나오는 트로이목마가 진짜 있었을까. 거기에 궁금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인제 그분이 은행가로써 독일에서 성공을 하신다음에 그 모든 역량을 가지고  그리스로 넘어가서 트로이지방에 가서 목마가 있나 계속 발굴을 했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터기에 그 주위에 있는 촌로들에게 식사대접을 했네요. 그랬더니 식사대접을 하다보니까 술자리에서 어느 촌로분이 과거고대의 트로이는 이 부위가 아니고 더 내륙이다. 그래서 그분이 내륙으로 갔어요. 그래서 발굴하다보니까 진짜 트로이 유물이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걸 모두 가지고 그리스에 가서  박물관에 가서 기증을 했어요.


트로이의 유물들이 그리스박물관에 가면 있습니다. 근데 어느 역사학자들은 트로이의 목마에 대해서 많은 비난을 합니다. 왜냐하면 트로이 목마가 나온 건 아주 유물이 깊이 있거든요. 사실은 그 중간에 있었던 유물들도 하나의 역사거든요. 근데 밑에 있는 걸 찾다보니까 위에 있는 역사가 없어진 거죠. 그런데 그렇게 역사에 대해서 참 동경하구요. 역사학자가 되었으면 참 좋았겠다고 옛날부터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꿈은 조금 남아있습니다.


본부장: 네, 그러면 회장님 역사학자에서 의사로 바꾼 어떤 계기가 있으십니까?

윤창겸: 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보니까 그 때만해도 살기가 어려웠어요. 그 반에서 전교생이 구두신은 사람이 한명정도 되었어요. 전부 까만 운동화신고 다녔을 시대니까 참 어렵게 살았던 시대 같아요. 그때 보면 건강보험이라는 제도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많이 아픈 대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그래서 그로인해서 빨리 돌아가시는 분들이 종종 제 주위에서 봤어요. 제가 의사가 되면 이런 분들을 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해서 고등학교 때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요. 어떻게 하다보니까 의사가 됐습니다.


아나운서: 첫 번째 이야기. 그의 결심 행복한 의사가 되다.


본부장:  어떻습니까?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 많으실 거 같아요?

윤창겸:  네. 외과의가가 되면서 느낀 게요, 원래는 무슨 과를 갈까 생각을 해봤어요. 그중에서 외가의가가 가장 보람찬 거 같아요. 왜냐하면 요새 와서는 3D 업종이라고 수입도 많이 떨어지고 힘들다고 그러는데 그래도 외과의사라는 자리가 그 아픈 사람들, 목숨하고 관계되는 이런 부분들을 치료해줄 수 있을게 보람찰 때가 많고요. 또 하나는 남들이 뭐라고 그래도 남들은 대학졸업하고 그래도 비보험이 많은 과 성형외가니 안과를 갔는게 더 좋지 않겠냐. 그래도 지금도 후회는 없고요 보람찬 거 같습니다.

본부장:  근데 각 과목에서 외과를 택하신 또 다른 계기가 있습니까?


윤창겸:  제가 생각하기엔 그랬어요. 그러니까 과를 선택하겠다는 생각을 졸업할 때까진 몰랐는데 응급실에 가서 근무를 해보니까 외과가 가장필요한 과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환자들이 생명하고 왔다 갔다 하는데 도움이 되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지금 와서도 후회하는 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남들은 경제적으로 볼 때 성형외과다 피부과다 안과다 이런 걸 왜 안했느냐고 그러는데 그때 생각으로는 그랬어요. 청진기를 안 들고 그렇지 않으면 의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지금도 뭐 외과의사가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도 많이 차니까 외가가 가장 좋다고 전 생각하고  다음에 또 같은 기회가 온다 고해도 전 외과를 할 겁니다.

본부장: 네. 외과하시면서 정말로 보람 있는 그러한 사례가 좀 있습니까?

윤창겸: 보람보다는 내가 좀 더 잘 도와줬으면 환자가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더 많이 남는 과가 외과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본부장: 회장님 일화가운데 드라마로 좀 만들어 봤습니다. 잠깐 들어보시고 진행을 하겠습니다.


Fade in

재연 드라마:

내레이션:

1989년 윤창겸은 수원 도립병원 진료부장 이었다. 그 당시 수원도립병원에는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윤창겸의 하루는 누구보다 바빴다.


이 선생: 김 선생 그 얘기 들었어? 506호 할머니 퇴원하셨대.

김 선생: 그 유방암 걸린 할머니?

이 선생: 어. 왜 그 유방암이 폐에 전위 되가지고. 숨도 못 쉬시고 그랬잖아. 아침에
            서울 사는 큰 아들이 와서 가망 없다고 퇴원 시켰대. 뭐 입원비도 아깝고 그렇
            다네.

김 선생: 어머, 어떻게 그 할머니 혼자 사시는데. 밥은 누가 챙겨드려?

이 선생: 쯧쯧. 그러게 말이야.

김 선생: 어. 윤선생님 어디 나가세요?

윤창겸:  어. 나 좀 어디 나갔다 올게. 아 볼일이 좀 있어서.

김 선생: 어, 근데. 손에 들고 계신 거 산소통 아녜요? 그거 어디에 쓰시게요?

윤창겸:  아, 이거 좀 쓸데가 있어요. 금방 들어올게요.

윤창겸:  할머니. 할머니 계세요? 저 윤선생이예요. 할머니.

할머니: 아이고.. 선생님이 여기 웬일이세요? 아휴.. 누추하지만 이리로 좀 들어오세요.

윤창겸:  네. 할머니 병원에 더 계셔야 되는데.. 제가 힘이 못돼서..
            제가 염치가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할머니 제가 해드릴 수 있을게 이 산소
            호흡기 밖에 없어요. 죄송합니다.

할머니:  아휴.. 이렇게 고마울 데가.
            선생님 내가 죽어서 천당 갈지 지옥 갈지는 모르지만 내가 죽으면 우리 의사선
            생님 오래사시라고 꼭 기도할게요. 나 죽어서 하늘가면 마음착한 우리선생님  
            기도 많이 할게요.

윤창겸:  할머니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세요? 할머니가 죽긴 왜 죽어요? 말씀을 하셔도
            참 할머니.. 자꾸 그런 말 하면 저 안와요.

할머니:  에휴.. 늙고 병들면 죽어야지..

윤창겸:  할머니.. 빨리 나으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죠. 네?

할머니: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 죽어서도 안 잊을게요.



내레이션:
의사 윤창겸은 환자를 대할 때 그 마음이 가족과 같았다. 그들이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었고 환자가 그를 찾으면 그것에 감사했다. 윤창겸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던 그 초심을 잊지 않았다.


Fade Out

본부장: 회장님. 드라마를 통해서도 좀 나왔습니다마는 이렇게 안타까운 때가 자주 있습니까?


윤창겸:  네, 많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의사하면서 생각할 가장 큰 좌우명이 뭐냐면 우리가 환자를 살리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환자가 좋은 길로 가도록 도와주는 게 특히 외과의사의 가장 중요한 거거든요. 그런데 수술하다보면 자만에 빠질 때가 있어요.  어떤 거냐면 내가 마치 이병을 낫게 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하는 거는 수술을 할뿐이지 또 치료를 할뿐이지 그것이 환자가 살고 죽는데 자기가 관여하는 건 아니고 단지 도와주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그래서 수술할 때 다른 스승도 얘기했고 선배들도 얘기했고 또 후배들이나 이런 분들이 얘기하는 게 수술하기 전에 과연 꼭 수술을 해야 되나 다른 방법은 없는가를 내가 내 자신이라면. 돌이켜보고 생각하는 게 좌우명이죠. 그래서 안타까울 때야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매일 후회하는 게 외과의사의 삶이죠.


본부장:  네. 드라마를 통해서도 굉장히 정 적인 것을 느꼈는데요. 그런데 밖에서는 의사하면 일반적으로 좀 냉정하다, 차갑다. 이런 인상을 좀 많이 받거든요?  그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창겸: 네. 그게 과거의 선배의사님들을 보면 차갑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정이 굉장히 많고. 여유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사회분위기가 요즘은 좀 각박해지고 또 굉장히 빨리빨리 같은 게 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또 건강보험 구조상 환자를 많이 봐야 되다 보니까 말수도 없어지고 또 환자와의 관계도 가족 같은 관계로 좀 못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의사들 마음속에 있는 거는 가족과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표현을 못해서 그런 면이 더 많을 겁니다.



아나운서: 두 번째 이야기. 찾아가는 의사 윤창겸. 마음으로 일하다.



본부장:  그럼, 이제 여기서 경기도의사회에 대해서 얘기를 좀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경기도의사회에서 하는 일을 간단히 소개를 한번 해주실까요?


윤창겸: 네. 경기도의사회 하면은 의사들의 권익단체다 많이들 얘기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것보다는 의사들일이 개인적인 게 많거든요? 환자를 봐도 환자가 찾아오는 게 많고 그러면 단체는 모여서 시간과 여유를 남겨서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어떻게 보면 환자, 더 나아가서는 우리국민한테 어떤 봉사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것이 의사가 해야 될 가장 큰 덕목이죠.


본부장: 지금회원이 대략 얼마정도 되십니까?


윤창겸: 만 이천 명 정도 됩니다. 회원 중에는 대학병원에 의사들도 계시고 교수선생님들도 계시고 개인병원에 봉직하신 분들도 있고 그다음에 개인병원을 운영하시는 분들도 있고 또 보건소 같은데 근무하시는 분들까지 합치면 만 이천 명이 좀 넘습니다.


본부장: 회장님께서는 작년 12월에 회장님이 되셨죠?


윤창겸: 네. 그렇습니다.


본부장: 취임을 하시고 나서 젊은 분이 회장이 되셨다는 그런 얘기가 좀 나왔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윤창겸: 그런 건 없고요. 원래는 제가 벌써 회장이 되기에는 아직 나이도 젊고 그런데 경기도의사회 회원을 거의 한 십 몇 년을 했습니다. 밑에 이사부터 그 다음에 부회장 이렇게 해오고 있는데 전임회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운명인줄 알고 맡게 되었습니다.


본부장: 네. 우리 경기도의사회가 다른 단체들과 달리 봉사활동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주위에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지 소개 좀 한번 해주시지요.


윤창겸: 네, 많은 건 아닌 것 같고요. 제일 먼저는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해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주위에 어려운 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차상위계층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분들한테 많은 도움을 주고자 일요일이나 이럴 때 봉사를 하고 있고요. 전 회원들이 나와서 봉사하고 있고요. 그래서 또 하나 하고 있는 게 심폐소생술이라는걸 교육하고 있는데 작년에도 했는데 심폐소생술이 왜 필요하냐면요. 심근경색이나 이런걸 로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와서 특히 술 많이 드시고 담배도 못 끊으시고 또 지방끼 있는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까 혈관에 동맥경화증이 심해지면서 혈압도 높아지시고 또 치료도 안 받고 당뇨도 많아지시다 보니까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수 있어요. 그래서 그때 우리가 삼십분이나 한 시간 동안 심폐소생술을 하면은 돌아가실 분들을 많이 살릴 수 있습니다. 그 심폐소생술은 배우기만 하면 간단해서 우리 경기도 도민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거의 한 오백여명 교육시켜 드렸고 이제 점점 더 순차적으로 많이 해 나가려고 합니다.


우리 국가로 볼 때 재원들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건 좀 안타깝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좀 해볼까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요번에도 북한에도 갔다 왔는데 북한에 있는 주민도 온 종류에 병원이 이제 하나 생겼어요. 한 달에 한번 정도씩 가서 북한에 있는 의사들 교육도 좀 하고 주민들도 좀 봐드릴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본부장: 그러면 방금 말씀하신 그 심폐소생술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구요? 어떤 기관이나 이런 데를 위주로 지금 하고 있습니까?


윤창겸: 네. 그래서 작년에는 포천에서 하고 부천에서 포천에는 포천도립병원에서 우리가 가서 직접 했고요. 그다음에 부천도 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못하는 것이 사람모형이 있어요. 모형이 있는데 그건 구급 대에서 빌려서 했는데 애니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애니하나가 굉장히 비싸거든요. 그래서 많이 갖다놓고 못해서 한 번에 할 수 있는 주민이 한 팔십 명 정도밖에 못합니다. 그래서 해 나가고 있고 확충되는 대로 좀 더 본격적으로 할 예정입니다.


본부장: 경기도의사회에서 회장님께서 계속 활동해오셨다고  말씀하셨는데 활동 중에 아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주시죠.


윤창겸: 네. 제가 생각하기엔 그렇습니다. 어떤 에피소드 이런 거보다도 전번 회장님이 사실은 갑자기 돌아가셨거든요. 그런데 본인 자신은 돌보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중국 저쪽에 우르무치라고 아주 먼데가 있습니다. 거기를 이박삼일 동안 가서 진료하시고 다시 일본인의사회하고 교류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하고 같이 일본인의사회에 갔다 오신 다음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셔서 돌아가셨거든요. 봉사도 중요하지만 내 몸도 좀 생각하고 했었어야 하는데 그러면서 안타깝기도 하고요. 역대회장님들이 다 봉사를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좀 더 열심히 봉사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제대로 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본부장: 그러면 경기도의사회에서 앞으로 특별한 계획 같은걸 갖고 계십니까?


윤창겸: 네. 그래서 차상위계층에 대해서 좀 더 확대해야 되고 작년에 같은 경우는 환자진료를 각 지역에서 했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시간이 여건이 되면 은 차상위계층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진료도 하고 또 하나는 노인들 중에서 좀 어려운 분들한테 식사 같은 것도 좀 대접을 해볼까 그런걸 지금 준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세 번째 이야기. 윤창겸, 그가 성공을 말한다.



본부장:  회장님 그러면 여기서요 좀 일상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장님께서 의학공부를 하실 때 선배나 스승한테 많은 가르침을 받으셨을 텐데요. 존경하는 분 말씀 좀 해주시죠.


윤창겸: 네. 존경하는 선배님들이나 스승님들은 많은데 그중에 한분이 아주 제가 존경하고 지금도 찾아뵙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마 오래는 못사실 것 같아요. 그 선생님이 저를 가르칠 때 수술하고 나면 몇 분 동안 수술했고 환자를 다시 한 번 보고 네 몸처럼 봤는가. 그걸 매일 저한테 꾸짖으시고 하시고 칭찬도 해주셨거든요. 그런데 그 선생님이 김명일 선생님이신데 몸이 안 좋으셔서 현재 누워계시고 잘 거동도 못하시거든요. 스승의 날이면 그 선생님 찾아가서 그 선생님 만나 뵙고 그러는 게 참 보람 이예요. 그런데 선생님을 제가 젊었을 때는 아주 전지전능한줄 알았어요. 그런데 요번에도 만났더니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외과의사가 되는 거 자체가 발을 뻗고 잘 수 없는 직업이다. 왜냐하면 저 자신도 수술을 맨날 하지만 수술하고 나면은 그 환자가 괜찮은지 나쁜지 걱정하거든요. 어떤날은 너무 조용한 날이고 걱정이 없는 날이면 은 나한테 또 어떤 시련이 올까봐 마음이 불안합니다. 똑같이 제 스승님도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본부장: 의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후배들한테 당부하고 싶은 말 해주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죠.




윤창겸: 네. 의사라는 것이 직업을 소명을 받고 자기가 잘됐던 못됐던 택했다면 의사로써 본분을 정말 잘 해야 합니다. 의사라는 본분은 환자를 도와주는 것이거든요. 남들이 볼 때는 이익집단으로 보일 수 있고 또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의사는 결코 그렇지 않거든요. 항상 남을 도와주는 마음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마음속에 꼭 갖고 있어야 되고요. 두 번째는 어느 정도 시간이 모자라더라도 시간을 내서 주위를 도와줄 수 있는 또 돌아보고 항상 갖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부장: 네. 회장님이 현재가 있기까지에는 부모님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윤창겸: 네. 당연하죠.


본부장: 네. 부모님 한번 이 자리에서 자랑내지 회고한번 해주시죠.


윤창겸: 아버님 어머님이, 아버님은  거의지금 구십팔 세 십니다. 어머님도 이제 구십이 다 되셨고 어머님 아버님이 저한테 얘기하시는 게 그거예요. 뭐냐 하면 이 땅에 태어났으면 민족과 겨레를 위해서 본인이 뭘 할 것인가 생각해 보라고. 그래서 제가 돈을 좀 벌고 이런는것에 대해서는 별로 터치를 안 하셨어요.

그리고 너 잘 되는 것이 중요하고 뭘 해도 남에게 해가되지 않는 사람이 되라. 남에게 몹쓸 짓하는 사람이 젤 나쁜 사람이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현재까지는 제가 돌이켜봐도 남에게 몹쓸 짓은 안했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저는 모르죠. 그러나 아버님 어머님이 그렇게 얘기 해준 게 지금까지도 남아있고요. 아버님 같은 경우는 지금도 산에 걸어 다니시고 그러시거든요. 얼마 전까지도 손수 운전을 하셨어요. 제가 운전대를 뺏었습니다. 혹시 다치실까봐. 아버님 어머님은 어느 누구나 다 존경하시 않겠습니까? 저도 마찬가지로 아버님 어머님이 있으시니까 제가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부장: 네. 윤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성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윤창겸: 남이 볼 때 이 사람이 잘됐다 이런 건 중요치 않은 것 같고요. 내가 이 땅에 태어났으면 이 땅에 대해서 우리 겨레들이나 민족 가까이 보면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아, 이 사람은 그래도 남에게 몹쓸 짓 안하고 보람차게 생을 보냈다하는 생각. 그리고 이 사람이 태어날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아마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뭐 이렇게 특별하게 성공이라는 것은 전 없다고 생각하고요. 이 땅에 태어나서 보람차게 살아가느냐,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 만큼 도와줬는가. 도와주는 게 넉넉하다고 도와주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가 부족하지만 남을 도와주고 나면 얻는 건 그것보다 훨씬 많으니까. 회원들은 그럽니다. 왜 우리 의사회가 홍보를 왜 안하냐, 알리고 그래야 된다. 현재는 홍보시대가 아니냐, 그러는데 홍보보다는 음지에서 도와주고 그러면 본인자신이 보람을 느낄 때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부장:  회장님, 취미는 있으십니까?

윤창겸: 취미는 산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일요일 같은 날 새벽에 한 네 시쯤 산에 올라가면 먼동 틀 때 보면 은요 굉장히 상쾌해요. 한 대여섯 시간 산행하는 걸 참 좋아합니다.


본부장: 회장님께서 좋아하시는 십팔번지가 있으십니까?


윤창겸: 그런 건 없는데요.


본부장: 없으십니까? 좋아하시는 노래하나.


윤창겸: 노래는 뭐 특별한 건 없고, 기다리는 마음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본부장: 네, 기다리는 마음이요.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윤창겸: 아유, 아닙니다. 노래 정말 못 합니다. 들려드리면 다들 도망갑니다.


본부장: 의사로 생활하시면서 또 살아가시면서 꼭 이루고 싶으신 그런 일이 있으십니까?


윤창겸: 많겠죠. 모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역사를 참 좋아했거든요. 존경하는 인물이라 하면 단재 신창호 선생 이였고요 민영환선생님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삼학년 때는 민영환 동상을 제가 아침마다 청소해 드렸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됐든 지금은 너무 혼돈된 상태인 것 같아요. 요새 북한에도 좀 개성에도 갔다 왔는데 너무도 어렵게 살고들 계세요.


그래서 민족을 위해서 뭘 도와줄게 없을까하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합니다. 우리 다 같이 경기도의사회, 더 나아가서는 의사회, 더 나아가서 우리 국민이 도와주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야지 우리가 살아갈 수 있지. 저도 외국에서 생활을 좀 했었지만 밖에 나가면 애국자가 되고 안에 들어오면 서로 다투는데 다투지 말고 가까운 이웃을 위해서  뭔가를 좀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본부장: 회장님, 이렇게 바쁘신 중에도 오늘 저희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윤창겸: 아, 감사합니다.

본부장: 정말 감사합니다.


Ending



오늘 김갑동의 성공시대는 경기도의사회 윤창겸회장과 함께 했습니다. 환자 가장 가까이에서 도와주고 그들의 힘이 돼 주고 싶어서 의사가 됐다는 윤창겸 회장. 윤 회장의 성공비결은 남을 도울 줄 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성공을 찾아가는 김갑동의 성공시대 청취자 여러분 모두 성공의 주인공이 되는 그날 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김갑동 이었습니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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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선거운동과 말끔한 말솜씨, 친화력, 능력 어디 모자랄데가 없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망설이시는 분이 계신다면 이분을 찍어도 후회는 없을듯합니다.

 

아래 동영상은 선배님이 올리신 걸 제가 편집해서 줄여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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