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칼 바람 과의 싸움 ... 3월
3월 2일
오늘은 火요일, 火생방이 있는 날로서 먼저 겪어본 후보생들이 말하길 10분이 한시간 같다는 가스실 체험을 하는 그 날이다. 7시 30분에 식당을 출발해서 8시 30분 경 효O 사격장에 도착했다. 날씨는 맑았으나 바람이 매우 심했다. 일명 영천 칼 바람, 말X 바람 으로 불리는 바람이다. 오전과 오후에 걸쳐 방독면 착용, 보호의 착용, MOPP 등 여러가지를 실습했다. 교육장을 이동할 때는 뛰어서 이동했으며 구령은 "알아야 산다"를 외치도록 했다. 마지막 코스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가스실. B반 먼저 들어갔는데 들어갔다 나온 후보생의 얼굴은 눈물, 콧물, 침 범벅이 되어있었다. 이어 우리 분대 차례가 되었는데 2분 정도 들어가므로 2분만 숨을 참으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건 착오였다. 들어가자 마자 눈, 코가 미치도록 따가웠고 숨이 막혀왔다. 게다가 숨을 참지 못하도록 제자리 뜀걸음을 시키는 거였다. 1분 동안 가스를 마시고 방독면을 쓰게 되었는데 방독면을 꺼내는 것 조차도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가스실에서 나온 후 한동안 눈물, 콧물을 흘려야 했다. 두번 다시는 들어가기 싫은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3월 3일
오늘은 효O 사격장에서 '장애물' 교육 & 실습이 있었다. 주로 지뢰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M14,16,18 등의 연습지뢰를 조작, 폭파, 해체하는 과정을 실습했다. 실습 후에는 요약평가를 치뤘는데 실습이 끝날 때쯤 내리기 시작한 눈은 시험을 치를 때는 함박눈이 되어 있었다. 후보생은 이구동성으로 '눈을 맞으며 시험을 치르기는 처음이다'하며 입을 모았다.
3월 4일
학문관에서 오전에는 정신교육, 오후에는 각개전투를 배웠다. 정신교육 시간에 비디오 시청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군대와 일반 사회와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예로 들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이병(번역상으로는 일병이지만 private은 이병이다 -ㅡv) 하나를 구하기 위해 대위를 포함한 ranger 8명이 투입되는 영화 속 상황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군대이기 때문에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군인의 자세를 통해 딤후 2 : 4 말씀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3월 5일
오늘은 각개 전투 실습을 하는 날이다. 각개 전투를 치른 다른 중대의 후보생에 의하면 '기어서 산을 올라가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오전 8시경 각개 전투 교장에 도착해야 했는데 6시 기상임에도 무릎, 팔꿈치 등을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내무실이 어제 밤 또는 오늘 새벽에 일찍 기상해서 옷과 피부에 면 반창고, EB를 붙이느라 부산했다. 중대원 모두 교관님을 흡족케 하여 훈련 횟수나 훈련 시간을 줄일 의도로 '각개' '전투'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오전에는 생존과 기동 등 각각의 상황에 맞는 훈련을 실시했고 점심을 먹은 후 종합 훈련을 하게 되었다. 오전에 배운 내용들을 총망라 해서 산을 기어오르는 것이었는데 주간경계전술->화생방->적기출현 의 기본 과정 후에 기는 과정(포복)에 돌입하게 되었다. 가상 적 진지 에서는 M60이 작렬했고 연막탄과 폭발이 난무(가끔 있었음)하는 분위기에서 위의 코스를 3번 왕복했다. 대헌이는 나이도 어리고 체력도 좋은 편이라 1조 10명중 1등을 했는데 덕분에 다른 후보생들이 상대적인 피해를 보았고 마지막 3번째는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기었다. 옆의 동료를 위해 자신의 장점을 포기할 줄 알고 자신의 단점은 극복하려는 마음과 행동이 곧 전우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3월 8일
오늘 부터 3주차다. 인턴만 해도 2주차와 3주차의 내공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곳에서의 1주일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큰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 같다. 3주차 부터는 자판기, PX, 전화의 사용이 허용되며 행진 간에 큰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달라진다. 학문관 에서 내무실 원들이 뽑아주는 코코아를 마셨고 행진 시에 팔을 무리하게 흔들지 않아 좋았다.
3월 9일
오늘은 어제 독도법 이론 수업에 이어 독도법 실습이 있는 날이다. 북문에서 3km 가량 떨어진 독도법 교장에 도착한 것은 8시 30분 경. 이론을 실습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고 오후부터는 3인 1조가 되어 주간, 야간 목표 찾기를 하게 되었다. 1시 30분 경 출발하여 집결지로 4시 30분 까지 도착하는 것이 주간 목표 찾기 였는데 첫번째 목표는 오전 실습 때 다녀간 곳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두번째 목표는 계곡을 내려가 지맥으로 올라가거나 효사로를 따라 진행하여 참조점 에서 지맥으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었는데 결국 후자를 선택했으며 효사로 옆 7-8부 능선을 따라 도착하였다. 세번째 목표는 도로를 지나 지도에 나타난 방죽과 소로를 따라 쉽게 발견하였다. 저녁을 먹고 야간에는 7시경 집결지를 출발하여 9시 30분 까지 모이게 되었다. 첫번째 목표를 찾고 방죽으로 내려가려 하였으나 조교에게 저지 당했고 결국 효사로 옆을 개척하여 중간 집결지에 도착 효사로를 따라 두번째 목표 도착. 9시 40분경 집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걸어다닌 거리는 대략 20km 정도로 내무실에 와서 발을 보니 발 뒤꿈치가 심하게 부어있었다.
3월 11일
수류탄 훈련이 있었다. 연습 수류탄은 지난 주 각개 전투 때 던져본 적이 있지만 오늘은 K-400 세열 수류탄을 던지게 된다. 오전에는 이론 수업과 핀 뽑는 법 + 투척 자세를 배웠다. 오후에는 연습 수류탄을 던지는 연습을 했고 그 후에 실제 수류탄을 던졌다. 가장 화력이 약한 폭발물에 속하는 수류탄의 폭발력은 영화에서 보던 그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3월 12일
PX 사용이 허가되었다. 각 소대별로 1명씩 가도록 했는데 불행히도 1소대장의 무능함(or 우유부단함, 소심함?) 때문에 1소대는 PX에 가지 못했고 다른 소대들이 초코파이와 초코바, 콜라로 배를 채우는 동안 특식만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야 했다. 사회에 있을 때는 줘도 안 먹던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한 개가 아쉽다는 후보생들을 많이 보게 된다.
3월 13일
법무 후보생들이 유격 훈련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일조점호를 간단히 마치고 북문 쪽으로 법무 후보생들을 마중하러 나갔다. 북문부터 양팔 간격으로 길 양 옆에 섰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법무 후보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같은 환영을 받기에 합당한 훈련을 통과한 그들과 그에 맞는 환영을 해준 훈육장교, 군의 후보생들 ... 훗날 생을 마감하여 천국에 가게 되면 이같이 환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유격 훈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생에서의 고생과 오늘과 비교할 수 없는 상급 ... 상급을 소망하며 주님께서 맡기신 고난과 어려움들을 인내할 것을 다짐해 본다. 오후에는 유격을 대비해서 군장을 꾸렸다.
3월 14일
유격을 떠나는 날이다. 오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이미 훈련을 마친 법무, 함께 유격을 떠날 10,11 중대, 다음주에 유격을 떠날 12-14 중대의 박수, 격려를 받았다. 6시에 연대장님의 훈시가 끝나고 9중대를 선두로 북문으로 향했다. 대헌이는 1소대장으로 첨병분대, 지휘근무자 뒤를 이어 20번째 정도로 행군을 시작했다. 식당에서 북문에 이르는 길에는 법무, 군의 후보생들 뿐만 아니라 생도들까지 나와 있었다. 군악대의 연주를 뒤로 하고 북문을 나섰다. 35km 행군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곧 해는 졌고 주위의 불빛과 희미한 산과 물의 윤곽만으로 그리고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사이에 있는 북극성으로 동서남북을 가늠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 행군 시간은 12시간 ... 등산으로 다져진 체력이라 걷는 것에는 자신 있었지만 불편한 군장과 딱딱한 군화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정신력을 동원하게 만들었다. 50분 마다 주어지는 10분간의 휴식은 양말을 갈아 신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소변을 보고 나면 출발 3분 전이 되기 일수였다. 행군 시작 5시간이 조금 넘어 중간 집결지인 지곡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각 종파 별로 사람들이 나와있었고 우리 9중대는 기독교 관계자들이 간식 배식을 담당했다. 라면을 먹고 남는 시간 20여분 동안 양말을 갈아 신었다. 아직 갈 길은 멀었고 행군의 고비라는 화산 등반 3시간이 남아있었기에 ...
3월 15일
12시 25분 10중대 다음으로 지곡 초등학교를 출발했다. 2시간 가량을 걸려 도착한 곳은 보현산 온천랜드 삼거리 였고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오르막길은 비포장이었지만 차가 다닐 만큼 넓은 길이었다. 말로만 듣던 화산 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30분 간격으로 휴식을 취하고 걷기를 2시간 정도 ... 저 멀리 산 위로 불빛이 보였다. 목적지라고 생각되니 힘이 쏟았다. 산모퉁이를 돌아서 본 불빛의 정체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였고 성문 같은 곳 위에선 저승사자(?) 복장의 사람들이 북과 징을 치고 있었다. 음산한 분위기의 환영을 받으며 30여분을 걸어가자 허름한 건물들이 있는 유격장이 나타났다. 아침식사를 하고 내무실에서 오침에 들어갔다. 3사관학교 내무실이 호텔이라고 했던 법무 후보생들의 말이 떠올랐다. 오늘은 정비다. 내일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유격 훈련을 대비하기 위한 ...
3월 16일
유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다. 8시경에 유격 입소식을 시행했다. 이곳에서의 차렷 자세는 앞굼치를 모두 붙이며 모이거나 흩어질 때의 구호는 "유격 야 !"로 하게 되었다. 입소식 후에 유격체조를 실시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PT는 14개의 유격체조 중 6번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조교의 시범 후에 실습을 하게 되었는데 좌우로 정렬, 좌우로 나란히, 차렷 자세, 기타 제식 동작에서 신속, 민첩, 통일 + 준비동작 + 번호 & 체조명 등 에서 꼬투리를 잡혔고 사정없이 체조를 반복해야 했다. 3시간 가량의 체조 시간 후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부터 기초 장애물 훈련에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타이어 넘기, 철조망 포복, 철봉 이동 넘기, 통나무 오르기 등 기초적인 장애물들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한 cycle을 도는데 40분 정도가 걸렸는데 힘든 것은 훈련 자체가 아니었다. 훈련 전 실시한 1시간 가량의 유격체조, 장애물 중간의 "유격자신" 구호 복창 장애물간 이동시 유격체조가 힘들게 했다. 그 중에서도 곽OO 교관에 의해 실시된 훈련 전 유격 체조는 오전의 3시간 보다 힘든 시간이었다. 교관의 원하는 바는 4가지 였다. (1) 원기 왕성한 목소리 (2) 신속하고 민첩한 동작(0.1초 내) (3) 단결, 일치된 동작 (4) 살려고 하는 자 죽을 것이고 죽으려 하는 자 살 것이다. 이날 오후는 목소리가 맛이 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다. 4시 30분 경 훈련은 끝났고 저녁에는 야간 취식에 들어갔다.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불을 피워 반합으로 밥, 반찬 등을 해 먹었다. 입대 후 찐밥만 먹다가 처음으로 지은 밥을 먹으니 맛이 기가 막혔다. 반찬은 풍성하지 않았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맛있게 먹고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3월 17일
오전은 종합 장애물, 오후에는 공수 기술을 하는 날이다. 어제 저녁에 날이 흐리더니 아침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훈련 전 유격 체조는 어제처럼 심하게 하진 않았다. 종합 장애물은 총 11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외줄 타기, 두줄 타기, 세줄 타기 코스가 압권이었다. 두줄->세줄->외줄 순서로 이루어졌는데 우리 조가 줄타기를 시작할 무렵에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고 기온은 더욱 떨어져 계속 뛰지 않으며 몸이 얼어버릴 듯한 날씨였다. 덕분에 조교들이 시키기 않아도 알아서 유격체조와 제자리 뜀걸음을 하는 분위기 였다. 구름 가득한 유격장을 줄에 매달려 이동하기는 쉽지 않았다(대부분의 후보생들은 구름을 안개로 착각하기도 했다) 같은 조였던 31번 후보생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줄타기에서 조교와 교관의 재촉, 질책을 무지 받아야 했다. 오전 교육은 12시가 못되어 끝났다. 오후 교육이 1시 30분으로 연기되었는데 모형 탑 공수낙하를 할 차례인 내가 속한 B반은 유격장에 늦게 도착하여 1시간 가량의 얼차려를 받아야 했다. 어제 오후에 받았던 기합을 능가하는 수준에 어깨동무 하고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하기, 유격체조 15번(뒤로 취침->기상->앞으로 취침->기상->앉기->점프해서 일어서기의 6호 동작), 유격체조 8번 후 진흙탕에 大자로 누워 눈을 감고 비를 맞으며 '어머니 은혜'를 부르며 축 늘어져 있어야 했다. 크리스찬인 교관의 입에서 X, XX 같은 욕설이 나올 때마다 유격 교관으로서의 당위성과 크리스찬 으로서의 불가성이 교차되곤 했다(X, XX는 그리 심한 욕은 아니었음을 밝혀둔다 ^^; 다만 대헌이의 홈피 특성상 약간이라도 거친 표현도 불허하므로 이렇게 표현했음). 비내리는 겨울날에 좀 무리하게라도 몸을 풀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방식에서 약간(?)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얼차려가 끝난 후 모형 비행기에서 강하 연습을 했고 모형탑에서 실제로 뛰어 내리게 되었다.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m에서 폼을 재고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안경을 벗고 4명 1개조가 되어 모형탑에 올라갔다. "보고", "8번 교육생 강하 준비 끝!", "강하" 시력으로 2급을 받은 대헌이는 앞뒤, 아래 모두 뵈는 것이 없었고 난간에 섰을 때 공포감은 거의 없었다(시력이 안 좋은 대부분의 후보생들도 같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 교관의 "강하"라는 말에 그냥 뛰어내렸고 어느새 줄에 매달려 수 십미터 전방으로 날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강하 후에는 동료들에 의해 정지되어 줄을 풀었고 "유격자신"을 외치며 모형탑 앞으로 이동했다. 그 후 밧줄 회수, 동료 정지시키기, table 이동, 도르래 운반 등을 했고 교육을 마쳤다. 막사에 가서 샤워를 했고 흙 투성인 샤워장을 청소했다. 밤에는 야전취침을 하게 되었다. 작은 텐트에 3명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밤새 다리를 펴지 못했고 입김이 나는 텐트 안에서 러닝,팬티+춘추내의+동내의+방상 내피+운동복+전투복+방상 외피+목토시+귀마개+모자+침낭 으로 무장하고 하룻밤을 버텨야 했다. 불만의 대상이었던 유격장 막사가 그리워 지는 순간이었다.
3월 18일
새벽에 잠에서 깨었다. ㄱ자 형으로 휘어져 기현이 형과 기둥 사이에 끼어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빨리 "기상" 소리가 들리길 고대하며 그렇게 새벽을 보내야 했다. 다행이도 감기는 걸리지 않았다. 오전에는 헬기 라펠, 오후에는 산악 기술을 실시하게 된다. 헬기 라펠은 부교관인 구OO 대위가 담당했다(A반은 어제와 동일하게 곽OO 교관) 이것 역시 땅을 직접 보지 않기 때문에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유격 훈련 중에 동일 반복 최다수가 '하강 준비'였을 정도로 하강 준비 자세를 오전 내내 연습했다. 나름대로 라펠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남기윤 후보생의 라펠 시범을 보고 '저게 라펠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산악 기술이 있었다. 군의 과정은 R1,2,3,5 4개 과정을 하게 되는데 오늘 오후는 A반은 R1,2 내가 속한 B반은 R3,5를 하게 되었다.(A반, B반의 편성 기준은 연장자와 부상자이며 B반에 건강한 후보생들이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훈련의 강도는 두 반 모두 똑같았다) 처음에 R5를 하게 되었는데 환자를 업고 80도 경사의 암벽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환자 역할로 업혀 내려가게 되었는데 중간에 두 번 떨어졌지만 다치진 않았다. 그 다음은 20m 절벽을 올라가는 R3.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으나 폼은 좀 안 나는게 사실이다. 이곳 산악 기술 교장은 능선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었다. 유격 교장만 아니라면 출사를 와도 좋을 정도였고 나중에 다시 한번 오고 싶을 정도였다. 저녁에는 어제의 텐트를 제거하고 8인용(?) 텐트를 설치했다. 다른 조랑 조인트를 하여 총 6명이 자게 되었다. 어제와 달리 다리는 펼 수 있었으나 양 옆 사람들에 끼어 꼼짝 못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하루만 자면 호텔(?)이 기다린다 ... 힘내자! ^^
3월 19일
유격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 의류대를 간단히 챙겼고 산악 교장으로 이동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유격 체조를 간단히 했다. 마지막 유격 체조라 그런지 반복 구호가 거의 나오지 않았으며 어느새 유격 체조를 즐기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B반이 R1,2를 할 차례인데 시간 관계상 둘 중 한가지만 하게 되었다. 내심 R2를 기대했으나 줄을 잘 못서 R1을 하게 되었다(군대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 --;) 어제는 오후라 R3,5 쪽 암벽에 햇빛이 들었지만 오늘은 아침이라 우리가 있는 R1,2 암벽에 햇빛이 들어 좋았다. 마지막 유격 코스이기 때문에 최대한 멋있고 과감하게 해보려 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리도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무사히 마침에 감사를 드렸다. 모든 훈련이 끝나고 "유격 자신"을 외치며 처음 집결지로 모였다. 곽 소령과 구 대위와 함께 허물없는 대화, 휴식을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은 버리고 좋은 추억을 가지고 내려갈 것을 당부했으며 나 또한 그러리라 다짐했다. 곽 소령이 예전에 '교회에서의 모습과 교장에서의 모습 중 어느 것이 본 모습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교회에서의 모습이 본 모습이라 했다. 교회에서 정장을 입고 교장에서 처럼 행동하거나 교장에서 교관 복을 입고 교회에서 처럼 행동한다면 더욱 말이 안될 것이다. 막사로 내려온 후 의류대 마무리와 군장을 대강 꾸렸다. 그 후에 오침에 들어갔다. 유격 출발 전의 오침 때는 잠이 안와서 뒤척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잠이 쉽게 들었다. 4시 쯤 기상해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고 군장을 완료했다. 단독 군장으로 연병장에 모여 퇴소식을 하고 6시경 유격장을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무문에 도착했는데 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교들이 포도대장(저승사자 복장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이거였다) 복장으로 북과 징을 치고 일렬로 박수를 치며 환송해 주었다. 올때의 그것과 차이점은 "수고하셨습니다"가 추가 되었고 표정도 밝았다는 것 그리고 구 대위와 유격 대장님도 함께 있었다는 점이었다. 가는 길은 행군 거리가 5km 정도가 연장되었고 화산을 내려간 후에도 400m 가량의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3시간 가량은 왔던 길로 내려갔으나 그 이후에는 전혀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오후 11시경 이름 모를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9중대는 모 후보생 덕분에 얼차려를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훈육대장의 돌출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행군을 끝내고 돌아와서 진상(?)을 듣고난 후 그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3월 20일
초등학교에서 라면을 먹고 출발한지 1시간 가량이 흘러 비포장 도로에 접어들었고 경사가 완만하게 시작되었다. 아마도 여기가 그 산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유격장 에서 본 지도상에는 그리 높지 않고 그리 길지 않은 길이었는데 실제론(체감상으론) 화산을 오를 때 처럼 힘들었다. 특히 산마루를 돌고 나면 오르막길이 지속되는 지형은 심리적인 압박을 주었다. 게다가 행군을 위해 발바닥에 붙여두었던 면 반창고가 떨어져 마찰열을 증대시켰고 발바닥 전체가 2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 따끔, 욱신 거렸다(태어나서 그만 걷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든 때가 아니었을까...) 새벽 4시 30분 경 유격장으로 갈 때 지나왔던 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곧 도착할 거라는 기대감에 발의 통증을 참아가며 발걸음을 옮겼고 6시경 3사관학교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기상 나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잠시 멈춰서서 '우로 어깨 걸어 총'을 했고 군장, 복장을 정리했다. 비록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패잔병과 같이 돌아가서는 안된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승리자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출발할 때 처럼 오히려 그 이상의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북문을 들어섰다. 군악대의 연주와 군의 후보생, 생도들의 환영 박수를 받으며 3사를 들어섰다. '이제 끝났구나 ...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에 뿌듯함이 넘쳐났다. 식상에서 식사를 하고 내무실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목욕탕으로 목욕을 갔으며 오침에 들어갔다. 오후에는 빨래, 정비를 하고 PX 에서 먹을 것을 사다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3월 21일
일요일이다. 아침 식사 후 9중대 27명은 충성대 교회로 향했다. 도착하니 곽 소령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단 하루 만에 180도 변한 모습(1주일 간의 변신에서 돌아온 것이겠지만...)에 조금은 어색하고 반가운 생각이 교차했다. 예배 중에 2제대에 대한 격려의 박수와 기도를 했고 저녁에는 2제대에 대한 환송을 했다. 힘차게 군장을 메고 군가를 부르며 북문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지난 1주일 간의 유격과 1주일 전에 그들처럼 걷고 있었을 내 모습이 교차했다. 살아서 돌아오길 !
* 유격 소감 & 느낀 점(훈육장교에게 제출했던 내용을 가감해서...)
1. 동료들은 악을 쓰며 유격 체조와 군가를 외치는데 입만 뻥긋 거리는 후보생이 적지 않았다. 그들로 인한 total volume의 저하는 고스란히 나머지 후보생들의 몫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조교나 교관은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양심은 그것을 알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 다는 점이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 롬 4 : 12 -
2. 훈련을 무사히 마치게 하심에 감사 드린다. 등산과 축구로 다져진 20대 중반의 대헌이도 정신력의 한계 까지는 아니어도 정신력으로 버티며 참았는데 서른 살이 넘고 담배와 뱃살에 찌든 다른 후보생들도 다 해내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믿지 않는 자들과 자녀들에게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일 것이다.
3.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믿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다. 높은 곳에서 행했던 각 훈련에서 앉아메기 로프와 스냅 링에 생명 줄을 달고 몸을 의지하며 훈련을 했다. 특히 R1에서 하네스를 메고 링에 로프를 걸었을 때는 이 로프와 링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다면 절대 수직 절벽에 발을 내딛을 수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주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보다 심오하고 절대적이며 필수적이다.
4. 훈련의 꽃이라 불리는 유격을 마친 후의 느낌은 지난 한달 간 참여했던 다른 어떤 교육, 훈련 보다 뿌듯했다는 점이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며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고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3년 후 전역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자신감과 뿌듯함이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5. 불행도 비교에서 나오며 행복도 비교에서 나온다. 3사에서의 생활에 불만이 있던 후보생들도 유격장의 내무실, 샤워실, 식당과 비교해 호텔이라고 표현했고 야외 취사, 야외 취침 때는 유격장의 시설들마저 그리워했다. 나보다 못한 이들을 보고 행복을 느끼고(상대적) 주님을 바라보며(절대적) 만족을 느껴야 할 것이다.
3월 22일
오전에는 정비 시간 후에 내무실 검사가 있었다. 다른 내무실에서 먹을 것을 먹다가 훈육 대장에게 걸린 것이다. 훈육 대장이 11시까지 내무실을 정리하고 먹을 것을 먹든지 버리든지 할 것을 지시했다. 유격 후 남아있는 취식물은 초코파이 5개, 사이다 1.5L, 핫브레이크 10개 ... 내무실의 다른 후보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였다. 11시 까지는 주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받는 것이 미덕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10시 부터 11시 까지 대헌이가 먹은 것은 초코파이 4개, 핫브레이크 6개, 건빵 1봉지 ... --; 간식을 배불리 먹은 것이 오랜만 인것 같다. 11시 부터 12시 30분 까지 내무실 검사가 있었는데 일부 후보생들은 담배, 휴대폰이 적발 되서 완전 군장으로 중대 사전을 돌아야 했다. 내무실 검사가 끝난 후 각 내무실은 빈곤의 시대가 도래했고 식사량은 예전 수준을 회복했으며 저녁 특식의 인기도가 다시 치솟았다. 다시금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3월 24일
지휘 통솔 교육을 받았다. 나의 군 생활은 일반 병(兵)이 아니라 장교로서 지휘관, 참모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기에 적지 않은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군도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자원(resource)이 제한되어 있기에 모든 이를 기쁘게 하고 모든 이를 만족시켜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의 목표 역시 모든 군인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 롬 14 : 18 -
3월 25일
마지막 야외 수업이 있었다. 개인화기, 화생방, 독도법, 각개전투, 수류탄에 이어 '경계'를 마치게 된 것이다. 머지 않아 군인화 단계가 끝나며 수료와 임관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30여 쪽이 넘게 작성한 수양록 처럼 한달 전과 비교해 아주 많이 변해버린 내 자신을 보게 된다. 삶 가운데 정지란 없다. 진보와 퇴보 둘 중 하나가 있을 뿐. 군인으로서는 확연한 진보가 있었다. 그렇다면 의사로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상대적인 우월성을 모두 압도하는 절대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진보한 것일까? 하나님 앞에서 진보하고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대하며 ...
오늘 근무지 추첨이 있었다. 저녁 8시경 교양실에 중대원 전원이 모인 가운데 근무지 추첨 결과를 발표했다. 3주전 특전사 지원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그것을 막으셨다. 그 후 개인적으로 항작사에 걸렸으면 했는데 결과는 8군단 특공대대였다. 위치가 어딘지 임무가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결과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며 그곳이 내게 주신 산지라는 것이다. 다른 군의관이 가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그 무언 가를 위해 나를 부르신 거라 생각 되었다. 일의 강도, 지휘관 성격, 병사들의 영적 필요, 격오지 순위, 교통 정도 등등 따지자면 수도 없지만 하나님께 감사해야 겠다. 그리고 세세한 필요까지 선하게 예비하고 공급해 주시길 기도해야 겠다.
3월 26일
3사 생도 39기의 졸업, 임관식이 있었다. 몇 일 전부터 특공연대, 해병 특수 수색대(녹색 베레모가 인상적인... 식장 옆에 있는 연못을 뒤지기 위해 왔다고 했다), 헌병 들이 3사관 학교 교정와 야외 교장을 수색, 정찰, 경계 했었는데 드디어 임관식 날이 된 것이다. 원래는 노무현 대통령이 오기로 되어 있었으나 탄핵 문제로 고건 대통령 대행이 참석하게 되었다. 식전 1시간 반 전에 충성 연병장에 도착했고 스탠드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상공에서는 몇 분 간격으로 UH-60이 이착륙을 했고 고급 승용차들이 왔다 갔다 했다. 아마도 수 십번 왔다 갔다한 O대의 UH-60과 승용차 중 하나에 고건 대통령 대행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식이 시작되고 졸업생들과 생도들이 입장했다. 1부를 마치고 의장대, 군악대의 묘기(?)를 보고 2부를 끝으로 식장을 빠져 나왔다.
3월 27일
2제대가 유격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45km를 밤새 걸어온 그들의 모습은 매우 지쳐 보였지만 패잔병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큰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승전병 처럼 몸은 지쳐 있지만 마음은 유격과 행군,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기쁨에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이 보면 별 감흠이 없었겠지만 유격을 경험했던 군의 1제대, 법무, 생도들의 심정은 모두 똑같았으리라... 어제 새벽에 읽었던 히브리서 12 : 1 말씀이 떠올랐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3월 28일
오늘은 일요일 종교 행사가 있는 날이다. 오전과 저녁 두번의 종교 행사가 있는데 종교별 참석 인원의 변동이 있었다. 기독교는 오차가 2명 이었는데(27->25) 다른 종교는 수십명 차이가 나기도 했다. 불교 참석자가 오전에는 50명 가량 되었는데 오후에는 일부가 천주교로 개종(?)하여 3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군에 오기 전 초코파이 많이 주는 곳으로 군인들이 몰린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실제로 그러했고 오히려 더 심했다. "천주교... 오늘은 저녁에 라면 끊여 준데!" " 난 기독교는 안맞는 것 같아 잠을 잘 수가 없어" "불교 가면 전화도 쓸 수 있고 PX도 갈 수 있어" "오늘 천주교 어땠어? 먹을 걸 한 테이블 차려주는데 과일도 있고 배 터지는 줄 알았다" 30살이 넘은 전문의 샘들의 입에서 나오는 일상적인 대화 내용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얼마나 편한지, 잘 수 있는지, TV를 볼 수 있는지, 전화.PX를 사용할 수 있는지, 제공되는 특식은 어떤 것인지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천주교, 불교는 많은 후보생을 끌어모으기 위해 이런 쪽으로 많은 노력을 하는 것 같다. 반면 기독교는 초코파이 하나, 커피 한잔이 전부다. 육체적인 유익은 ... 다른 종교에 비해 돈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될 수 있겠지만. 하지만 일정한 인원들 게다가 다른 종교에 뒤지지 않는 숫자가 꾸준히 참석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배부른 까닭이로다 - 요 6 : 26 -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 요 6 : 68 - 모든 교회 참석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분명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어 각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이들이 기독교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리고 대부분의 예배 참석자들도 먹을 것은 덤이며 주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교회에 온 것이다. 주 마다 또는 일요일에도 오전, 오후에 참석하는 종교가 다른 인원들은 스스로가 염불보다는 잿밥을 챙긴다는 것을 공표하고 자랑하는 것 밖에 안된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 관계자 들은 반성해야 한다. 한 중생이라도 더 불교에 귀의 시키기 위해 먹을 것을 투자한다면 빌 1 : 8 에서 바울의 고백과 유사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 두 가지는 첫째 그 길이 사망의 길이며, 둘째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열심은 예수님께서 책망하셨던 바리새인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천국 열쇠를 쥐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이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던 바리새인들 처럼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그 길로 오도록 중생들을 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심판은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예전에 불교에서 간식으로 햄버거와 통닭을 특식으로 제공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살생을 금지하는 그들의 교리는 햄버거 사이에 눌렸고 식용유에 튀겨져 버렸다. 종교 행사와 관련된 후보생들의 행태를 보며 실제 兵들의 심리 상태는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장교 후보생으로 지내면서도 이렇게 마음이 가난해져 있는데 전방 부대의 사병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만약 단순한 상담자, 치료자의 역할만 담당한다면 통닭으로 신도수를 늘리려는 불교 관계자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할 수 있는 군의관이 되길 다짐해 본다. 충성대 교회에서 부른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가 정말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오늘은 특별히 저녁에 군의 후보생 세례식이 있었다. 총 64명이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9중대는 4명이 었다. 유격대장님의 열정이 9중대에겐 조금 부담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당 불꽃 감리교회에서 설교와 세례, 특식으로 섬겨주셨다. 세례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롬 10 : 9,10,13 말씀을 주장하며 기도했고 행 8 : 39 말씀을 생각하며 세례자들 모두를 위해 기도했다. ' 주님 저들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여 주옵소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으니 그들이 진실로 주님으로 시인하게 하옵소서. 세례를 받고 혼연히 떠났던 이디오피아 내시처럼 기쁨으로 임지로 가게 하시고 군 생활 동안 믿음을 지키고, 믿음이 자라며, 믿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저녁에는 훈육 대장과 중대원들 과의 대화의 시간이 1시간 반 가량 교양실에서 있었다. 그 동기는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게 도출되었다. 빡 쌘 9중대 , 깃발부대 화이팅 !
3월 29일
오늘은 학사와 여군들이 들어오는 날이다. 3일 전 그들의 막사가 될 5동에 가서 청소와 관물 정리를 도와 주었는데 그들이 온 것이다. 식사 전부터 차가 한 두대씩 들어오기 시작하여 오후 학과 시작 무렵에는 후보생들과 보호자들로 충성관 근처가 북적거렸다. 각각 다른 개성적인 모습들... 몇 시간 후면 전원이 같은 헤어스타일, 복장, 걸음 걸이, 행동으로 바뀔 것이다. 그들을 보며 2월 19일 그들처럼 제각각 이었을 군의 동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과 한 달만에 군인의 모습을 갖추게 된 우리들의 모습들 ... 오늘 부터는 군인화 단계가 끝나고 장교화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민간인에서 군인이 되는데 엄청난 변화가 있었듯이 장교화 과정을 통해 또 다른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3월 30일
오늘은 이틀 전부터 있었던 2차 체력 검정의 마지막 1.5km 뜀걸음을 실시 측정하는 날이다. 한달 전에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 펴기, 뜀걸음 각각 47회(불합격), 40회(4급), 6분 50초(4급)를 기록했었는데 이번에는 84개(특급), 84개(특급), 5분 55초(1급)을 기록했다. 모두 특급을 맞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결과에 감사 드린다 ^^v
3월 31일
일요일과 수요일엔 아침 메뉴로 햄버거가 나온다. 구성은 쌀빵, 샐러드, 고기, 소스, 잼이 전부이며 일부 후보생들은(특히 강OO 후보생) 군대 햄버거를 '군대리아' 라고 비꼬기고 한다. 하지만 나는 햄버거가 나오는 날이 좋다. 보통 3개 많을 때는 4개 까지 먹을 때도 있다. 오후엔 정신교육이 있었다. 실습으로 '나는 어떤 군의관이 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거기에 쓴 내용중 일부를 가감하여 적으려고 한다.
군의관의 위치는 편제상으론 특별참모/지휘관 이자 장교이면서도 다른 직업 군인들과 구별되는 특성을 보이며 야전의 지휘관들이 기대하는 수준을 유지하는 군의관들은 전투군의관 이라 하여 '천연기념물' 처럼 취급 받기도 한다. 9중대의 많은 후보생들이 대헌이를 전투 군의관 1순위로 꼽으며 내 밑으로 들어오는 의무병 들은 다 죽었다는 말을 농담삼아 하곤 한다. 이유는 (1) 강인한 체력 (2) 젊은 나이 (3) 제식 훈련시 패기,열정 (4) 분대장, 소대장 역임시 열정적인 인솔 (5) military mania (6) 입버릇 처럼 말하는 빡센 군생활에 대한 기대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이숙자 중령(진)은 전투 군의관을 행군을 같이하거나 뜀걸음을 1등 하는 군의관이 아니라고 했다. 행군시 환자 발생 지역을 예측, 대비하거나 뜀걸음시 발생하는 cardiac arrest 시 대처하는 것을 예로 들며 전투 군의관이란 군의관이 해야 되는 일을 마땅히 성실히 이행하는 군의관으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의무병 들을 빡세게 굴리고 행군, 뜀걸음, 훈련 증에 참여하는 것은 '특공 군의관'정도로 규정하면 될 것이다. 나는 어떤 군의관이 될 것인가?
난 군인이기 이전에 의사다. 군인은 명령에 목숨을 걸지만 의사는 피에 목숨을 건다. 난 직업군인들 진급 시켜 주는 것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군에 온 것이 아니다. 만약 상관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명령이 사람의 건강, 생명에 해를 주거나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소신껏 적절선에서 끊을 것이다. Band of brothers에서 두 상황을 떠올려 본다. 7편에서 E중대는 포이를 공격하게 되었다. 스나이퍼와 박격포, 88mm의 위협 속에서 대대장인 윈터스는 E중대를 계속해서 전진하도록 독려한다. 8편에서는 헤게나우에서 두번의 전투 정찰을 지시 받지만 두번 째 정찰은 싱크 대령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을 보내지 않고 거짓 보고서를 올리게 된다. 두 임무 모두 상관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고 위험도가 매우 높은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윈터스 에게는 두 임무는 확연히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전자는 합당한 명령이었고 다른 하나는 불합리한 명령이었다는 것이다. 윈터스는 군인이자 지휘관 이었고 상관의 명령에 대해 부하들에게 지시할 수 있는 위치였던 것이다. 군인의 존재 목적은 합당한 명령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이라면 생명이 위태롭다 하더라도 전장으로 내몰 수 있으나 군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지시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군의관으로서 상관의 지시를 나의 의학적 지식과 소신에 따라 복종하며 하급자에 대해서는 나의 권한 내에서 의무 지원을 할 것이다.
난 의사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이다. 의사는 심신의 병약을 돌보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영적인 병약까지도 바라보며 치료해 주어야 한다. 강요하지 않되 삶, 말씀, 기도로 강권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영적으로 잘 무장 되어야 할 것이다.
Daily life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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