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기본은 어디까지나 화이트! 그러나 컬러에 있어서는 ‘다다익선’이라는 옛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소재에 있어서는 목에 힘을 주어 ‘오로지 코튼!’을 주장했다 할지라도. 셔츠의 컬러는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블루나 옐로, 핑크, 옅은 브라운에 이르기까지.
간혹 화이트 셔츠만 고집하는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머리를 긁적이면 이렇게 대답한다. “넥타이 색깔 맞추기도 좋고, 어떤 수트에도 잘 어울리잖아. 매일 아침 셔츠랑 넥타이 색깔 맞추기 귀찮아.”
아, 답답하고도 답답하다. 자장면을 먹을 것이냐, 짬뽕을 먹을 것이냐를 고민하는 일이, 혹은 빵빵한 가슴을 가진 순이를 만날 것이냐, 늘씬한 다리를 가진 영희를 만날 것이냐 고민하는 일이 우리에게 진정 고통스러운 일이던가. 어떤 셔츠에 어떤 타이를 매치할 것인가 하는 것 역시 이런 고민들과 다를 바 없다. 우리를 고민에 빠뜨리지만 말 그대로 행복하고 즐거운 고민이라는 것이다.

깔끔한 느낌을 주는 블루와 패셔너블한 느낌을 주는 핑크, 믿음직한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베이지 컬러 셔츠는 꼭 갖추어 놓아라. 스트라이프 패턴 셔츠 역시 멋쟁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품목. 스트라이프는 아무 무늬 없는 셔츠에 비해 보다 정돈되고 세련된 느낌을 연출해준다. 단, 지나치게 화려한 색상의 스트라이프 패턴은 피할 것. 어떤 색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일단은 푸른색 계열의 스트라이프를 먼저 시도하라. 실패할 위험은 가장 적으면서 다른 컬러들보다 깔끔한 인상을 만들어준다.


사이즈
어느 옷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최고급 소재로, 최고 기술자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옷 잘 입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라. 누구보다 자신의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거기에 맞게 옷을 입는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셔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둘레. 목둘레가 너무 꽉 끼면 당신의 목은 줄줄이 비엔나의 연결 부분처럼 우스꽝스러워진다. 목둘레가 너무 크면 셔츠가 목 주위에서 빙빙 돌게 되고, 자연히 멍청해 보인다. 말이 난 김에 서랍 속에서 줄자를 찾아 자신의 목둘레를 한번 체크해보라. 똑바로 앞을 본 상태에서 셔츠의 깃이 닿을 만한 높이의 목둘레를 잰다. 거기에 3센티미터를 더한 것이 당신의 목둘레 사이즈다. 줄자 꺼낸 김에 팔길이도 한번 재보자. 팔길이 역시 똑바로 앞을 향해 선 상태에서 재야 하는데 목을 약간 숙이면 튀어나오는 목뒤뼈부터 재면 된다. 거기에서부터 어깨를 따라 손까지, 정확히 말하자면 손목뼈까지를 잰다. 그런 다음 거기에 3센티미터를 또 더하라. 그게 당신의 소매 사이즈다.
항상 재단사가 일일이 당신의 사이즈를 잰 다음 만드는 맞춤 셔츠만을 입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두 사이즈는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여자친구에게도 슬며시 일러두는 것이 좋다. 그녀가 깜짝 선물이랍시고 목둘레조차 맞지 않는 셔츠를 사다 주기 전에.

지난달에 말한 바와 같이(<에스콰이어> 2004년 7월호 165페이지 참조) 좋은 셔츠는 몸과 재킷 사이에서 유연하게 움직인다. 좋은 셔츠는 당신의 피부를 부드럽게 감싸면서 수트 재킷이 몸에 더 잘 맞도록 해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셔츠는 수트 차림의 기본이다. 값비싼 수트는 형편없는 소재로 만들어진, 사이즈조차 맞지 않는 셔츠를 가려줄 수는 있을지언정, 셔츠 자체를 훌륭한 것으로 탈바꿈시키진 못한다. 그러나 훌륭한 셔츠는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구려 수트를 훌륭한 수트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그게 바로 훌륭한 셔츠가 가진 위력이다.
그러니, 이제 어떤 수트를 입을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어떤 셔츠를 입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라. 수트에만 투자하지 말고 고급 셔츠를 장만하는 데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라(신사의 옷장엔 적어도 열 벌의 셔츠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더하기·빼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미분·적분을 잘할 수는 없다.
아, 근데 난 왜 그토록 수학을 지지리도 못했을까? 오백삼십팔 더하기 육백칠십육은? 천이백십사! 육천팔백이십구 빼기 사백육십삼은? 육천삼백육십육! 더하기 빼기를 이토록 잘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

△ 버튼다운 칼라 셔츠를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랑 입겠다고? 그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브리프케이스를 드는 것처럼 안 어울리는 짓이다.
△ 버튼다운 칼라가 세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는 맷 데이먼! 그러나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을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그건 언제나 감색 블레이저! △버튼다운 칼라의 칼라 버튼은 반드시 채울 것!
△ 누군가 당신을 초대하면서 “턱시도 차림으로 와주십시오”라고 정중히 부탁한다고 해도 당황할 것 없다. 턱시도가 없다면 블랙 수트를 입고 폭이 좁으면서 길이는 긴, 블랙 넥타이를 매면 된다. 단, 당신의 셔츠는 반드시 화이트 컬러에 스트레이트 칼라여야 한다. 버튼다운 칼라 말고!
△ 셔츠와 타이를 매치하는 일이 번거롭고 귀찮다고? 셔츠와 타이는 자칫 남들과 똑같아 보일 수 있는 당신의 수트 차림이 남들의 그것보다 돋보일 수 있게 신이 준 기회다.
△ 새 셔츠를 처음 입었을 때 목둘레 사이로 손가락 한 개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남는다면 당신은 이번 쇼핑에 성공한 것이다. 몇 번 빨고 나면 그 셔츠는 당신 목에 딱 맞게 될 테니까.
△ 빳빳하게 셔츠에 풀을 먹이는 것, 나쁘지 않다. 세상이 좋아져서 요샌 옷에 먹이는 풀도 스프레이형·스틱형 등 다양한 형태로 나와 있다. 단 너무 심하게 풀을 먹이지는 말아라. 춘향이의 목을 죄던 빗장처럼 셔츠 칼라가 당신의 목을 죌 수도 있으니까.
△ 셔츠의 플래킷과 벨트의 버클, 바지의 앞섶은 늘 가지런히 일렬로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 세탁기에 넣고 막 돌리면 50만원짜리 셔츠도 금방 5000원짜리로 전락하고 만다.
△ 당신이 셔츠를 살 때 기억하고 있어야 할 숫자-목둘레, 소매길이, 가슴둘레. △ 당신이 셔츠를 입을 때 기억하고 있어야 할 숫자-1.5센티미터(재킷 칼라 밖으로 나온 셔츠 칼라의 높이, 재킷 소매 밖으로 나온 셔츠 소매길이 둘 다 1.5센티미터가 적당하다)!
△ 마지막으로 셔츠는 반드시 백화점 세일 기간에만 사야 한다고 믿고 있는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당신이 하루에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생각해보라. 자, 이제 셔츠를 입고 보내는 시간을 생각해보자. 차를 위해서는 그토록 많은 돈을 들이면서 셔츠 사는 돈은 아끼겠단 말인가?

출처 : 순수소녀
글쓴이 : 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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