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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 `할리를 타면 자유` 4050세대 새 도전 [중앙일보]
한국의 `할리 데이비슨` 매니어들
두두두두~둥, 자연 속 무한 자유를 찾아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라이더들. 할리 데이비슨 오너스 그룹 한국지부는 20일부터 강원도 동해시 망상 오토캠핑 리조트에서 2006년 랠리를 개최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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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클럽을 수입하는 석교상사 대표이사 이민기(54)씨는 매일 5㎞씩 달리며 체력을 단련한다. 7월에 대형 오토바이인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미국 대륙 횡단 랠리(6000㎞)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커다란 오토바이에 어울리도록 턱수염도 기르고 있다. 그는 피터 폰다가 주연한 영화 '이지 라이더(Easy Rider)'의 주인공처럼 미국의 대평원을 지날 걸 생각하면 흥분이 돼서 잠도 잘 오지 않는다. 그는 "40대 후반이 되면서 외로워지고 경쟁에서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체력도 달리고, 거울을 보면 늙어지는 내 모습이 측은해졌다. 그때부터 할리를 타게 됐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봤던 할리 데이비슨의 육중한 외양과 웅장한 소리, 몰려다니던 라이더들을 기억하게 됐다는 것이다.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꿈의 대화'를 불렀던 가수 출신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범용(46)씨도 할리 동호인이다. 그는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사들은 집단 이기주의자'라는 비난에 충격을 받아 할리를 타기 시작했다. 삶에 대한 회의를 할리 데이비슨이 풀어줬다고 한다.

가죽점퍼에 징이 박힌 구두,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굉음을 내며 몰려다니는 60년대 히피풍의 이 미국문화에 승차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늘고 있다. 할리 데이비슨 코리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있는 할리 데이비슨은 약 3000대라고 한다. 할리 데이비슨은 배기량이 883cc에서 최고 1690cc까지의 헤비급 모터사이클이다. 가격은 1000만원대부터 5000만원까지. 한국인들이 주로 타는 1450cc는 3000만원 선이다.

할리 데이비슨은 한국에서 2000년 이후 매년 20% 이상씩 늘어나는 추세다. 자영업자.의사.회계사.변호사 등 고소득자에서 천주교 신부, 택시 기사 등 할리 라이더의 계층도 다양해지고 있다. 40대가 주류다. 이범용씨는 "더 나이가 들면 이런 위험한 일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진단했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은 독특하다. 할리 데이비슨이 좋아 2년여 노력 끝에 할리 데이비슨 코리아에 입사한 김윤영(여.28)씨는 "더 시끄럽고 더 와일드하고, 더 개성을 표출하고, 더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이 할리 라이더"라고 말했다. 김종인(67) 할리 데이비슨 오너스 그룹(HOG) 회장은 "오토바이를 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 나는 할리를 탄다"고 할 정도로 자부심이 크다.

"할리를 타면 집중이 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도 있고, "자연 속으로 자유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라는 이도 있고, "해골 모양의 허리띠 버클을 매고 달리면서 마음속에 잠재된 폭력성을 해소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할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인지도 모른다. 70년대 할리는 엔진 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엇박자가 났다. 진동도 커서 나사가 풀리는 등 고장도 잦았다. 연비도, 코너링도 매끈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 오토바이에 밀려 파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그런 불완전함이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소리가 매력이다. 주한미군 군무원인 마이클 J 헌터(46)는 "할리를 타면 다른 음악이 필요없다. 기어 1단부터 5단까지 다섯 가지 라이브 음악이 있다"고 말했다. 할리는 같은 모델이라도 소리는 제각각이다. 그래서 할리 데이비슨은 오토바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파는 회사'라는 말도 나온다.

엔진의 진동이 커 승차감이 좋을 리 없지만 이 진동도 매니어를 만들어냈다. 헌터는 "카우보이가 말과 한 몸이 된 것처럼 진동을 통해 할리와 한 몸이 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 HOG는 20일부터 강원도 동해시 망상 오토캠핑 리조트에서 2006년 랠리를 연다. 할리는 600대 정도, 라이더와 가족까지 1000여 명이 참가할 전망이다. 수백 대의 할리가 줄지어 동해안을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성호준 기자

◆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1903년 미국 밀워키의 모터사이클 제작자인 윌리엄 할리(William Harley)와 아서 데이비슨(Arther Davidson)이 만든 대형 모터사이클로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상표로 회사명은 두 사람의 성을 따서 만들어졌다. 일반 레저용 모터사이클의 배기량은 400~800cc지만 할리 데이비슨은 가장 적은 배기량이 883c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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