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억울한 의문사
신여정 2005-04-25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2004년 12월20일 여수 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고 박광천 원장 ( 35세, 선의고운의원 원장 )의 미망인 입니다. 남편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지 3개월이 훨씬 지난 지금, 의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아직 한 점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증폭 되고 있으며 소중한 남편을 잃은 저희 유가족의 마음은 계속 피폐 해져 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억울한 죽음을 통해 저희는 우리 사회의 정의에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 지식층이라 불리는 의사라는 사람들이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그에 걸맞는 도덕과 윤리라는 것이 있는 사람들인가? 에 대한 의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번 글은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낱낱이 밝히고 적어도 대한민국에 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의원님의 도움을 호소하기 위해 올리는 글입니다.

1. 사건 개요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은 외과 의사로서 서울 삼성 병원 에서 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 4년 동안 미용 성형 수술을 배워서 2004년 11월 2일 고향 여수에서 은행 대출로 처음 으로 병원을 개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 개원 하는 설레임과 기쁨은 잠시, 너무 힘들고 신경 쓰이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지역 의사회로부터 많은 간섭과 견제를 받은 것입니다.

우선 문제가 있었던 것은 간판 문제였습니다. 무려 세번이나 보건소 직원들이 병원으로 찾아와서 여수 의사회 민원을 받은 것이라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고칠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데 전문의 행세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병원에 걸려 있는 플랭 카드 등 여러가지를 문제 삼았습니다. 더군다나 세번째 찾아왔을 때는 병원에 환자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간호사에게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데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전화 받지 않느냐?라고 하였고 ‘후배가 개원하는 데 선배가 누가 좋아하겠느냐? 등의 상당히 거슬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여수시 의사회의 민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후배 선배 운운하며 문제 삼는 것은 국가 기관인 보건소가 할 온당한 발언이 절대 아닙니다. 마치 보건소가 의사회의 하부 조직인양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이런 문제로 개원 전에 보건소로 사전 상의 를 통해 보건소 로부터 문제삼지 않을것이라는 말을 듣던 차였기 때문에 더욱 어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지적대로 고쳐 놓았고 개원식도 못하는 떨떠름한 분위기(?)에서 병원 운영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수시 의사회의 심한 텃새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행동들로 남편은 많은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계속적으로 술자리 참석을 강요 받았습니다. 여기에 남편의 고교 동기 동창생이 주로 그 역할을 했는데 여수시 의사회 위원이기도 한 그 동기 동창생은 계속적으로 지역 선배의 인사를 이유로 남편을 술자리에 끌고 갔습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는데 2004년11월20일경에 그 동창생은 저녁에 퇴근하고 있는 남편에게 술자리 참석을 강요하는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은 순천에서 여수로 출퇴근하였는데 그당시 순천에 거의 도착한 상황이었습니다. 원래 불참을 분명히 몇번이나 얘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있는 남편 에게 전화를 통해 끈질기게 여수 술자리로 돌아올 것을 강요 하였습니다. 결국 마지못해 여수로 차를 돌려 갔는데 거기 술자리에 모여있던 젊은 의사들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오늘 나오지 않았으면 치명적인 실수가 됐을 것이다’ ‘ 너 혼자 사는게 아니니까 신경써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무슨 의사회가 깡패 조직인지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원래부터 이런 수직적인 분위기를 매우 싫어하였을 뿐더러 아무런 허물도 없고 이유도 없이 그런 모욕을 받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할수 없었습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여수시 의사회의 선후배 관계는 정말 엄격함 그자체였다고 합니다.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하는 행동이 얼마나 지나쳤으면 ‘ 나는 저런식으로까지는 못할 것 같은데…너무 심한 것 같다’ 라고 말한적이 있고 시아버지에게 과거 그 힘들었던 전공의 생활보다 더 힘든 것 같다라고 힘든 심정을 토로 한적도 있었습니다. 처음 개원하는 입장에서 여러가지 심한 간섭과 텃새를 받은 상황이 남편의 심정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2004년12월7일, 이번에도 그 동기 동창생은 원로들이 마련한 자리라면서 일방적으로 날짜를 잡아 남편의 병원으로 찾아와 망년회 장소인 일식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당시 시간은 7시무렵이었고 망년회는 약 7시30분부터 시작했을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확히 9시19분에 그 동창생으로부터 순천집으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남편이 술이 만취되었으니 집으로 데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취했다며 거리가 먼 순천집까지 전화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순천에서 여수까지 거리가 상당하므로 부인은 여수에 계시는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을 데려갈 것을 부탁 하였고 부친이 9시 50분경에 도착해보니 남편은 의식이 없는채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계단에 주저 앉아 있었고 주변에 여러명 서 있었으며 남편의 등뒤로 누군가가 남편을 껴안고 있었습니다. 동창생은 보이지 않았고 고인의 입과 코에는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었던 그들은 모두 의사였습니다. 외투도 핏자국이어서 어떻게 된거냐고 묻자 옆에 있던 의사가 ‘계단에서 넘어졌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상하게 느낀 부친은 신발을 찾아 신기고 누군가가 옆에서 병원으로 데려가라는 말을 듣고 여수성심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부친과 남편이 병원으로 간후 그 의사들은 병원에 동행해 주지도 않고 술자리를 계속 이어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 하여 CT촬영을 했는데 두개골 정면이 십자 형태로 15cm 깨졌고 뇌가 부어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위급 하다 하여 12시에 담당 의사로부터 수술을 하였으나 결국 뇌사상태에 이르게 되어 12월 7일 밤부터 13일을 호흡기에 연명 하다가 12월20일에 결국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술을 마신 남편이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가 다쳤다고 하는데 그당시 주변의 의사들의 진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술에 만취한 남편이 계단을 오르는데 고교 동기 동창생이 같이 오르다가 갑자기 뒤로 넘어지는 남편을 자기가 부축하려다가 자기도 같이 넘어져 자기 치아 한대가 부러지고 팔골절까지 입었다는 것입니다. 동창생은 부러진 자기 치아를 그자리에서 줍고 화장실가서 씻고 그 길로 치과 치료와 팔골절 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 당시 번갈아가면서 이비인후과 의사2명과 정형외과 의사 1명이 현장에 나와 시아버지가 올때까지 현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고인과 그들사이에 무슨일이 있어났는지 의문스러웠습니다. 그들은 그 다음날 남편이 입원해 있던 병원으로 오지 않았고 일단 현장에 같이 있었던 정형외과 원장 병원에 같이 모였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다음날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여 수사를 의뢰하였으나 집중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장검증도 6일이 지난 다음 에야 했습니다. 경찰은 2월2일 1차 수사 결과 발표를 하였는데 국과수의 남편의 혈중 알코올 농도 0.279% ( 조작될 가능성이 아주 높음) 를 근거로 술에 취해 단순히 계단에서 뒤로 넘어져 ‘안전사고’했다는 것으로 잠정 결론 내리고 있는 상황이고 얼마전에 광주지검 순천지청으로 사건이 이관되어 현재 재수사중이나 수사는 미비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이 사건 개요 이고 상식적으로 이사건을 접하는 사람이면 남편이 술에 취해 뒤로 넘어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입니다. 이는 명백히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고 아래와 같은 증거를 통해 분명히 폭행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폭행의 증거

개원 초기부터 충분히 고통과 괴로움을 당한 남편으로서는 그 술자리가 반갑지 않았으며 어떤식으로든지 간에 갈등이 작용했으리라고 보기 때문에 이는 바로 싸움과 폭행으로 연결됐다는 것이 저희 주장입니다.

1) 핏자국, 다리정강이멍, 가슴의 멍, 왼손등의 멍, 오른속바닥 Scratch

결론적으로 남편은 단순히 술에 취해서 계단에서 뒤로 넘어졌다고 하지만 고인의 몸에 난 상처는 이를 결코 설명할수 없습니다. 다리정강이에 커다란 멍, 가슴의 멍, 왼손등의 멍, 오른손 바닥에 scratch 입니다. 다 몸 앞쪽에 나있는 상처들이며 이것이 과연 뒤로 넘어진 사람이 가질수 있는 상처인지 도저히 이해할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여러 군데 묻어 있는 핏자국들인데 외투 핏자국, 런닝속옷의 핏자국, 팬티 핏자국, 바지안주머니 핏자국등입니다. 그리고 잘때도 안경을 쓰고 잘정도로 안경을 항시 쓰고 다니는 고인의 외투에 안경이 고이 접어서 들어 있었습니다. 같이 넘어져서 치아한대가 부러지고 팔골절을 입었다는 안과 원장의 상처도 싸움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처이지 같이 넘어져서 생길수 없는 상처입니다. 외투 왼쪽 어께 부분에 흙자국까지 발견되었습니다. 결국은 이는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정확히 증명 하는 상처이고 남편은 폭행을 받았다는 명확한 증거인 것입니다. ( 관련 사진은 www.cyworld.co.kr/pck0924 에서 볼수 있습니다.)

2) 의료 증거

① CT 분석

남편이 병원에 도착한 직후 CT 분석 결과, 상당수 의사들에 의하여 앞쪽에 피멍이 있고 종창 (SSWELLING : 부어오른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앞쪽에 타박이 가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상대적으로 뒤쪽은 깨끗 하다고 합니다. 뒤로 넘어진 사람이 이런 분석이 나올수 있을까요? 그리고 부친이 목격하였고 임상기록에도 들어 있는 코피 출혈에 관한 CT 소견상 안쪽에서 흘러나왔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장소가 깨끗하다는 소견으로 미루어 보아 바깥쪽의 외상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실제로 남편의 상처난 머리를 가장 잘 안다고 할수 있는, 사고 직후 가장 직접 수술을 집도한 여수 성심병원 신경외과 주치의 조차도 뒤로 넘어진 사람이 앞쪽에 그러한 골절이 생긴 것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고 증언하였습니다.

② 국과수 결과에 대한 반박

2005년 2월 2일 1차 경찰 수사 발표가 있었는데 12월 22일 부검을 시행한 국과수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고인의 사인은 두부 손상으로서 후두부 충격으로 인하여 전두부 골절등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COUNTRE COUP 이라고 한다는데 의학적으로 이는 보고된 사례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는 뒤쪽 뼈가 두꺼워서 뒤의 충격으로 앞쪽의 머리가 깨졌다는 논리 인데 실제로 두개골의 두께를 비교해 보면 앞쪽과 뒤쪽이 똑같습니다. 게다가 앞쪽의 피멍과 종창은 앞쪽에 상처가 생겼다는 이야기이므로 이를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리고 다리정강이 멍등이 타박상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럼 이는 대체 무슨 상처인지 궁금합니다. 그냥 스스로 생긴 상처인지, 아니면 자해한 상처인지, 그런 설명이 없었습니다.

근본적으로 국과수는 사인을 밝히는 국가 기관일뿐이지 수사 결과까지 결정짓는 신뢰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CT 분석과 너무 틀린 것이 그것을 반증합니다. 그 구체적인 사건의 결과는 수사를 통해서 밝혀져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타살인지 자살인지등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밝히는 것은 검찰과 경찰 수사인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국과수의 부검시 부검의도 가족에게 언급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2월2일 1차 수사 결과 발표는 국과수 결과만을 나열하고 그리고 진술만 그대로 접목하여 짜맞추기식으로 단순히 술취해서 안전사고 했다는 식으로 발표하였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수사를 했다는 것은 절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고 봅니다.

③ 혈중 알코올 농도 0.279%

남편의 국과수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 결과 0.279% 가 나왔습니다. 이는 대단한 치수로서 그 사실이 맞다면 남편은 정말 만취상태의 술을 먹은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이해하기 힘든 결과입니다. 남편이 치료를 받았던 여수 성심병원 임상기록에 보면 on SET 8:30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on SET 이란 의사의 사고 시작을 기록하는 것으로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아무 근거 없이 8:30이라고 기록하기 힘들다고 가정하였을 경우 실제로 다친 시각은 8:30 이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8:30은 남편이 병원을 나서서 실제 술자리를 시작한 시간의 한시간 남짓한 시간으로서 그 짧은 시간만에 이런 대단한 수치가 나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나오기 힘든 알코올 수치입니다. 특히 술자리의 술은 마쥬앙인데 알코올 도수가 11% 남짓인 이 술을 한시간 남짓 먹어서 어떻게 이러한 수치가 나올수 있겠습니까? 어떤 생리학자는 그자리에 있는 마쥬앙을 다 먹어도 그만큼의 수치가 나올수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이런 의문점에 대해 수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2월2일 수사발표는 그저 알코올 농도 0.279% 에 대한 내용만을 전제하고 술을 많이 먹었다는 것으로 수사를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실족사의 큰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알코올 농도의 결과 또한 의심케 하는데 조사를 의뢰할 때 혈액만 보냈는데 국과수에서 보내지도 않은 소변검사도 같이 나왔습니다. 이 의혹에 대해 경찰은 담당자의 실수였다고 하지만 국과수가 혈액과 소변도 구분 못하는 기관인지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 하기 힘들고 이 수치는 조작 되었을 가능성도 많다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2월2일 경찰이 발표했던 술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진술을 종합해 봐도 고인이 먹은 술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5~7잔, 어떤 사람은 4~5잔 이라고 하고 가장 많이 먹었다고 진술한 사람이 6~7잔입니다. 가장 많이 먹었다는 6~7 잔에 이러한 치사량의 수치가 나올수 있을까요?

3. 목격자들의 거짓 증언

1) 고인의 위급한 모습을 몰랐다?

남편은 바깥에서 상당시간 위독한 상태에서 방치되었습니다. 부친이 현장에 갔을 때 남편의 코와 입에서는 분명히 피가 나고 있었고 의무기록상에도 피가 났다라는 기록은 앞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피가 나고 있었음에도 그 즉시 병원으로 옮기지도 않고 과연 남편에 대한 상태에 대한 응급조치가 적절하게 이루어 졌느냐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현장에 있었던 의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ㄱ원장은 자는줄 알았다고 하고, ㅂ원장 및 인터넷에 글을 올린 의사회 총무 이사도 어두워서 이 상황을 못봤다고 합니다. 이것은 분명 거짓입니다. 실제로 세벽 3시에 가도 주변의 네온싸인 때문에 그곳의 밝기는 너무 밝습니다. 현장에서 같이 넘어졌다고 주장하는 동기 동창생은 자기의 부러진 치아를 직접 주웠다고까지 증언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고인을 뒤에서 껴안고 있던 ㄱ원장은 식당안에다 대고 물수건과 휴지를 갖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곳에서 피묻은 휴지를 많이 목격한 사람이 있고 그리고 뒤에서 누가 껴안는 채로 상당시간 있는걸 봤다고 하는 목격자의 증언도 있습니다. 껴안던 ㄱ원장, ㅅ원장 모두 코와 입을 잘안다는 이비인후과 원장이고 게다가 ㅂ원장은 사고를 다루는 정형외과 원장인데 피가 나서 물수건을 외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어두워서 몰랐다는 둥 자고 있는줄 알았다는 둥 통하지 않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인이라도 더군다나 사이가 나쁜 친구 사이라고 할지라도 술을 먹고 이랬다면 바로 병원으로 들쳐 업고 뛰는게 상식입니다. 더구다나 의사들이 이처럼 고의로 방치한 것은 싸움이나 폭행에 대한 또 다른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고 부친이 데리러 올때까지 그대로 방치하였던 것은 윤리적으로도 용납할수 없습니다.

2) 술자리 강요에 대한 거짓 증언

술자리를 여러 차례 강요하였던 그 동기 동창생은 자기는 술자리 참석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경찰에 진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거짓입니다. 실제로 병원을 같이 다녔던 저도 병원 간호사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남편이 이미 불참을 통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퇴근할때도 저녁밥을 먹을때도 집에갈 때 운전할때도 계속적으로 술자리에 참석하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귀찮은 정도로 남편을 술자리에 오라고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동기 동창생이 의사회 위원임을 근거로 생각해 보면 의사회의 알력이 많이 작용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3) 술자리 상황에 대한 거짓 증언

남편이 밖에 나가게 된 상황에 대한 증언인데 ㄱ원장은 남편이 술이 취해 옆에 있던 동기 동창생이 바람 쐬러 가자고 같이 밖에 나갔다고 했으나 나중에 동기 동창생은 자기는 밖으로 데려 나간 적이 없고 밖에서 남편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진술이 엇갈리는 것인데 바람쐬러 나간 사람이 게다가 신발도 신지 않고 상대적으로 가까운 앞문도 아니고 뒷문으로 나갔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실일 뿐 아니라 술자리에 있었던 두 사람이 그리고 취하지도 않았는데 말이 엇갈리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4. 부도덕한 여수시 의사회

1) 남편에 대한 행태

남편은 여수시 의사회 회원의 일원으로서 게다가 의사회 위원중 한명의 강요에 의하여 망년회에 참석하여 변을 당한 것으로서 여수시 의사회는 사건에 대한 많은 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회원이 밖에서 죽어가는 데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은 병원에 옮길 생각도 하지 않고 부친이 도착할 때까지 그냥 방치하였습니다. 의사라는 사람들이 피가 나며 죽어가는 사람을 어찌 그리 부도덕하게 다룰 수 있는지 정말 분노스런 마음을 금할수 없습니다. 설령 그자리가 노숙자 협의회 술자리라도 누군가가 죽어가는데 그렇게는 못할진대 의사라는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윤리와 도덕은 커녕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가 있는 사람들인지 의심케 합니다.

2) 유가족에 대한 행태

남편이 변을 당하여 병원에서 위급한 상황에 호흡기에 연명하여 있을 때, 그 술자리에 같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최소한 바로 즉시 문병을 와서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일진대, 사건 발생 5일 후에 그들은 모습을 드러냈으며 어처구니 없는 슬픔을 당하여 망연자실하고 있는 유가족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성심병원 담당 집도의도 아니고 신경외과장에게 고인의 CT 브리핑을 듣고 돈봉투만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돌아갔습니다. 게다가 현장에 있었던 사람중 한사람인 ㅂ원장은 아예 병원에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현장검증때도 ㅂ원장은 넋이 빠져 있는 유가족에게 불쾌하다는 식으로 냉랭 하게 대꾸하였고 동기 동창생은 몰려든 사람에게 기분 나쁘다는 식으로 큰소리 쳤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도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시어머니에게도 그 동기 동창생은 오히려 고인을 살리려고 나도 다쳤다는 식으로 오히려 역정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사건 발생후 여수시 의사회 공식의견이라며 글을 올린 의사회 총무의사는 – 이 사람도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입니다.- 사방에서 전화가 와서 진료를 못한 것을 불만스레 언급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최소한의 도의도 없는 실종된 사람들이 환자를 고친다는 의사들 이인지 기가 찰 노릇입니다. 누구나가 자기들이 있었던 자리에서 사람이 죽었으면 모두들 그 사람의 부모님이나 유가족들에게는 죄인인 것 입니다. 무릎꿇고 그 죄를 빌어도 단죄가 되지 않을 마당에 오히려 유가족들에게 이런 작태를 보이는 것은 정말로 용서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3) 의사회는 대체 무슨 집단인가?

의사회는 공신력이나 행정집행력이 있는 국가 기관도 아니고 단지 지역의 친목단체일뿐입니다. 어떤 현안에 대해서 이익단체로서 건의나 참여 정도를 할수 있는 단체라고 생각 되어지지 그 지역에 개원하는 개인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여러가지로 간섭이나 단속을 할 자격도 없고 권리도 없습니다. 더욱이 남편은 의사회에 어긋난 행동을 한것도 절대 아닌데, 왜 그런 고통을 받았을까 아무리 곰곰 생각해봐도 그것은 그저 잘못된 텃새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청운의 꿈을 품고 고향땅에서 개원했던 남편에게 의사회는 그런 권한을 넘어서 오히려 핍박을 가했던 것입니다. 會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고 할 수 있는 회원을 보호 하지도 않았고 사고 직후 시끄러워지자 바로 홈페이지를 폐쇄하였고 사후 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그야말로 무책임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의사회라는 것이 진정 자기들이 생각하는 지역의 유지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이름에 걸맞는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구성원들이 남편 및 유가족에게 한 행동은 책임있는 행동은커녕 기본적인 도리마저 상실된 위세와 텃새만 부리는 부도덕한 집단입니다. 여수시 의사회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 여수에서 개업하실 분은 미리 여수시 의사회에 신고 바랍니다. 광고 문제등 신고 하지 않아서 발생 하는 손해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볼썽 사나운 글을 보더라도 누가 보아도 이는 대단히 권위적인 냄새가 풍기고 신고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가한다는 협박성의 글입니다. 대체 ‘ 발생하는 손해’ 라는게 무엇인지 정말 궁금 하기만 합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친목단체가 이 따위 협박성글을 자기 홈페이지에 헤드라인으로 사용하고 새로 개원한 사람에게 그런 고통과 핍박을 안겨 주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5. 경찰 수사의 문제점

2005년 2월 2일 1차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수사를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라고 하지만 유가족이 듣기에는 핵심을 간과한 본말을 전도한 수사 였습니다.

1) 술에 취한 점만 수사를 하고 폭행의 개연성에 대한 수사가 없던 점

수사 결과 발표는 별게 아니고 관련자 혹은 목격자들의 진술을 그냥 듣고 읽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술에 취한 것을 수사를 하였지 폭행이나 구타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술자리에서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에 대한 진술만 가득 하였고 과연 상처와 정황으로 근거하여 폭행이나 구타의 의혹을 푸는 것에 대한 수사는 전혀 없었습니다. 한시간 남짓하여 게다가 마쥬양 6~7잔으로 술을 많이 먹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술을 많이 먹건 적게 먹건 여러 이상한 점, 특히 폭행으로 생각되어 지는 남편의 상처 그리고 동기동창생에 대한 상처, 목격자들의 피에 대한 사실 확인이 있는 데도 불구 관련자들이 피를 못봤다고 하는 위증, 넘어진 지점에 대한 고찰과 의학적으로 뒤로 넘어졌는데 그런 상처가 나올수 있는가에 의문점에 입각한 과학수사를 기대했던 유가족으로서는 그 모두가 실망 그자체였습니다.

2) 진술은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점

수사 결과 발표에 주를 이루고 있는 진술은 양쪽 당사자로부터 듣고 균형 감각있게 들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 하고 한쪽 방향의 내용만 일방적으로 받아 적어 발표하는것에 불과했습니다. 동기동창생의 술자리 참석 강요등의 진술은 상당 부분 거짓이 많았기 때문에 실제로 술자리 및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진술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 합니다. 따라서 수사결과 발표장에서도 저희는 이는 발표가 아니고 마치 의사회를 변호하여 주는 느낌이라고 말하기까지 했었습니다.

3) 수사관에 대한 불신

초동수사나 현장검증의 시기등을 본다면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해 발생 초기부터 소극적이었던 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별로 유가족의 입장을 반영하는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한 수사관은 국과수 부검시 일방적으로 의사회 입장을 두둔 하는 발언을 해서 분노케 한적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어떻게 명확하고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겠습니까? 경찰의 입장은 유가족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사건의 전말을 캐는 그런 모습이 아니고 안전사고로 빨리 종결시키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것 같습니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 라고 논리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정 하기 힘든 진술만으로 수사를 결론짓는 것은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이상은 남편의 의문사 사건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글의 맥락이 다소 두서가 없어 죄송합니다.

남편은 자기 소유의 병원이 생겼다는 것을 촌스럽게 좋아할 정도로 대단히 소박한 사람이었습니다. 위급 환자를 먼저 치료해 주던 인간미를 알던 사람이었고 저와 저희 아들, 딸아이에게도 좋은 남편이고 아빠였습니다. 그 소박한 사람이 자기 꿈을 펼치지 못하고 외부의 잘못된 힘에 의하여 묻혀 버렸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수 없습니다.

어느 누군가 그런 대단한 단체와 싸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니 아쉽겠지만 포기하라고 합니다.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꼭 진실을 채우고 있는 계란 이면 언젠가 바위도 깰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측면에서도 그리고 사회의 정의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원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요! 오늘도 슬픔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으로서 여러분께 호소 드립니다. 억울한 죽음이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거듭 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 박광천 원장의 처 신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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