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부터 자동차·빌딩까지…접착제가 세상을 붙인다
  • 한국 접착제시장만 1조규모
    테이프는 붙였다 뗐다 하는 점성·탄성 동시에 유지
    산업용 테이프 기능성 강화
    건축·자동차·의료용 큰 규모
    새차·새집 증후군 방지하는 친환경 제품도 잇따라 개발
  • 마이클 로만(Michael F. Roman) 한국3M 사장
    입력 : 2007.10.12 13:53
    • 접착제는 이미 일상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웬만한 가전제품에는 거의 대부분 사용되고 신발, 가방, 골프채, 책, 수첩 등 접착제 덕을 보는 물품은 수없이 많다. 어린이들의 공작놀이에도 사용되고, 접착제가 적용된 제품인 테이프 없이는 이삿짐을 싸기도 어렵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곳에도 접착제가 쓰이는 곳이 많다. 휴대폰의 터치스크린에도 광학용 투명 접착제가 사용되고, 빌딩 건축에도 초강력 테이프가 사용된다. 접착제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올라 갈 만큼 길고, 지금은 한국 시장 규모가 1조 원을 돌파했다. 무궁무진한 접착제의 세계를 탐험해 보자.

      ■ 떼었다 붙였다 ‘포스트 잇’의 비밀

      접착제란 서로 다른 물체의 표면을 물리·화학적으로 고착시켜 한 덩어리로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다.

      물체의 표면이 아무리 매끄럽다 하더라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울퉁불퉁한 미세한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접착제는 접촉한 두 물체 사이의 이 울퉁불퉁한 틈 사이로 스며들어가 굳는다. 물체 분자와 접착제 분자 사이에 강력한 분자력을 발생시켜, 물체를 붙게 만드는 것이다. 접착제는 사용하는 원료에 따라 물에 녹인 녹말풀, 가솔린에 녹인 고무풀, 시너에 녹인 폴리아세트산비닐계(系) 등과 같이 고분자를 용액으로 사용하는 접착제, 시아노아크릴레이트·비스아크릴레이트 등과 같이 처음에는 저(低)분자의 액상이던 것이 붙은 다음에 중합반응으로 고분자가 되는 접착제 등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테이프는 접착제와는 좀 다르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붙였다 떼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테이프에 쓰이는 접착성분을 점착제라고 부른다.

      접착제의 고유한 성질을 나타내는 점·탄성은 사용되는 고분자 물질의 액체로서의 점성(粘性)과 고체로의 탄성(彈性)을 얼마나, 어떻게 조절해 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액체로서의 점성을 많이 부여하면 접착력 성질이 강화되고, 고체로서의 탄성을 강화하면 응집력 성질이 향상된다. 접착을 유지하는 데 작용하는 것은 이 두 가지 힘, 즉 접착력과 응집력이다. 접착력은 서로 맞붙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개체 사이에 존재하는 힘이며, 응집력은 물질의 내부 연결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각각의 점착물질(고분자)이 상호 연결되어 이를 유지하려는 힘이다. 일반적으로 접착제는 접착 대상 물체에 작용할 때 최대 응집력을 얻고자 하는 것이고, 점착제는 이들 접착력 및 응집력이 상호간 조화를 이루어 적정하게 균형 잡힌 성질을 이용하고자 한다.

      접착력은 점성과 탄성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생기기 때문에 점성을 띠고 있는 접착제는 공기 중에서 굳어 접착 기능을 하게 된다. 순간 접착제나 본드 등을 접착 부위에 발랐을 때 시간이 좀 지나 단단하게 굳으면 액체 때의 점성에 고체의 탄성까지 추가돼 단단한 접착력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점착제는 공기 중에서 굳어지는 경화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도록 만든 것이다. 테이프에 처리된 점성 물질은 점성과 탄성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경화 단계 없이 붙여 압력만 가하면 접착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편리하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포스트 잇’의 비밀도 이 점착제에 있다. 3M은 고분자 구조를 가진 이 점착제의 분자 구조식을 기술적으로 조정해 점착제와 붙는 면이 완전 밀착이 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 구조식은 기업 기밀이다.


    • ■ 전기와 열 전달하고, 빛까지 인식하는 테이프의 마술

      액상 접착제에 비해 일상 생활에서는 테이프의 사용 범위가 매우 넓다. 테이프 역시 물체의 표면을 서로 붙어 있게 만드는 재료라는 점에서 접착제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따져 감압성 점착제(PSA·Pressure Sensitive Adhesive)라고 부르는 게 기술적으로 맞는 표현이다. 액체 접착제는 굳어지는 화학적 변화를 통해 접착을 유지하지만 테이프에 도포되어 있는 점착제가 접착 대상이 되는 물체에 붙어 물리적인 접착 상태를 유지해 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점착제는 고무계와 아크릴계, 그리고 실리콘계 점착제로 나눌 수 있다. 고무계 점착제는 역사적으로 오래되었고 용도도 다양하다. 고무계 점착제는 초기 접착강도가 우수하고 표면 에너지가 낮은 재질에 적용될 때 우수한 접착력을 유지한다. 가격도 싸지만 노화가 빠르고 화학적 변화나 자외선(UV)에 견뎌내는 힘이 약하다. 오래 가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에 비해 아크릴계 점착제는 합성 고분자 성분으로 점·탄성이 우수하며 화학적 변화·자외선 등에 잘 견딘다. 성능이 뛰어난 만큼 아크릴계 점착제는 고무계 점착제에 비해 복잡하고 우수한 제조 기술이 필요하다.

      테이프는 재질과 특성, 점착제 종류에 따라 수천 가지 종류가 개발돼 있다. 특히 고도 기술이 요구되는 산업에서는 이 특성들이 최종 제품의 품질 수준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예를 들어 핸드폰의 윈도우 글라스(액정표시 부분)를 조립할 때는 접착력의 강도보다는 치수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즉 프레임에 글라스를 고정시킨 후 크기 및 두께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원래 계획한 크기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작업시간을 단축시키거나, 혹시 다시 작업해야 할 때도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두께가 얇고 변화가 적은 테이프를 사용한다. 반면, 자동차의 차체 조립에 쓰이는, 아크릴계 점착제를 두껍게 처리한 테이프는 차체에 부착하는 무거운 부품이 영구적인 접착 상태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테이프가 주로 많이 사용되는 산업은 자동차 산업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전자산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테이프가 전자산업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부품들의 조합으로 소형 전자 제품을 만들기 위해 테이프는 최적의 해결책이었다. 테이프는 부품 사이의 공간을 최소화하고, 외관도 깨끗하게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의료시장에서도 테이프의 사용 범위가 넓다. 의료용 테이프는 생체 적합성이 뛰어나고 감염 등 부작용이 없는 점착제를 사용해야 하며, 재질은 통기성이 좋아야 한다.

      건축시장에서는 인테리어 작업을 위한 철판이나 목재 등의 접착에, 건물 외벽 공사 중 철판 건물의 보강대 접착이나 외벽 미관을 위한 대리석 등의 부착에도 초 강력 테이프를 사용한다.

      테이프의 진화는 계속돼 접착력 이외에 또 다른 기능을 발휘하는 제품으로까지 발전했다. 전자 회로 접착에 사용되는 전기 전도성 필름 접착제(ACF·Anisotropic Conductive Film)는 전도(電導)성 입자를 함유하고 있어 미세한 전자회로를 연결할 때 전류가 잘 통하도록 해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슬라이딩 또는 폴더 타입의 휴대폰은 이런 전도성 테이프가 없었다면 회로간 연결이 곤란해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열 전도성 테이프(TCAST·Thermal Conductive Adhesive Soft Tape)는 열을 발산시켜주는 방열 기능이 있어 전자 기기의 핵심 구동부위에서 나오는 열을 외부로 발산시켜 준다. 최근에는 열이 많이 발생하는 PDP에 많이 쓰이고, 휴대폰 같이 사람의 신체에 닿는 전자제품에도 쓰인다. 휴대폰의 경우 사람의 귀와 접촉하는 부위에는 열을 잘 전달하지 않는 일반 테이프를 적용해 장시간 사용시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고, 핸드폰의 뒷면 조립에는 열 전도성 테이프를 사용해 열을 반대편으로 빼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

      광학용 투명 접착제(OCA·Optically Clear Adhesive)는 LCD를 만들 때 부품들을 쌓아 올리는 층간 접착, 휴대폰의 터치스크린 부착 등에 사용된다. OCA는 빛을 97% 이상 투과해 마치 유리와 같은 기능을 하면서도 기존의 양면테이프에 비해 화면의 선명도를 높여주는 동시에 접착성도 좋다. 사용처도 넓어지고 시장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 ■ 퓨전 테이프, 친환경 테이프가 열어갈 미래 시장

      한국 산업용 테이프 시장은 1조 정도로 추정된다. 구체적으로 전자, 자동차, 건축용이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고, 3M을 비롯한 2~3개 외국계 기업과 다수의 국내 테이프 제조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향후 테이프 제품은 기능성 테이프 중심으로 확대되고, 기성제품보다는 고객의 요구에 맞춘, ‘맞춤형’ 제품이 강세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고객 주문형 제품은 고객의 여러가지 필요성을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고, 고객이 자유롭게 최종 제품의 설계를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시대에 따라 테이프의 특징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 테이프 접착제가 건축, 일반 산업, 자동차 시장에 주로 사용될 때는 강도(强度)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었지만 전자시장이 확대되면서 전기적 특성이나 자동화 적합성 등이 강조됐다.

      앞으로는 새로운 기회의 시장에서 접착제의 용도를 어떻게 잘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나 의료시장과 같이 고부가가치가 기대되는 시장에서 테이프 제품 사용처를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기능이 부가되거나 또는 여러 기능이 합쳐진 ‘퓨전화(化)’를 이뤄낼 수 있는 기술력이 선결 요건이다.

      또 가급적 자연과 가까운 강도와 물성(物性)을 가진 자연 친화적 접착제를 개발하는 것도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영역이다. 유기용제를 사용하지 않는 무(無)용제 친환경 테이프 개발에 3M은 주력하고 있다. 이 친환경 무용제 테이프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자동차, 휴대폰, TV 등 최종 완제품에서 발산되는 유기화합물을 줄여, 새차 증후군, 새집 증후군 같은 문제를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북극성
    글쓴이 : 아주조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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